예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 참 이상한 말이 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는 말씀이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한다는 말의 전제는 우리가 자유롭지 못한 존재, 즉 누군가의, 혹은 무엇인가의 노예가 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누군가에게도 구속되지 않은 자유인인데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유케 될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시니 말이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도 우리와 똑같은 궁금증이 있었다. “예수님,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그 누구에게도 종이 되었던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자유케 된다니 무슨 말이십니까?”(요:33).
우리는 육체적 혹은 물리적으로 누군가에게 귀속된 노예는 아니지만 우리는 영적으로 죄의 노예이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쇠사슬에 묶여 있고, 그 무게에 힘겨워하며, 그 굴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살면서 치열하게 몸부림치고 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계신다. 그리고 그 자유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말씀을 붙잡는 것이 곧 진리를 아는 것이요, 진리를 아는 것은 곧 자유함을 얻는 길이기 때문이다.
508년 전에 한 젊은 가톨릭 사제가 있었다. 그는 헌신된 하나님의 사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죄가운데 빠져있는 자신을 바라 보았으며, 죄책감과 수치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고, 끊임없는 두려움과 무력감속에 살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열심히 성경을 연구하며 답을 찾으려 했고, 특별히 시편과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연구하면서 비로서 절대적인 참 기쁨과 평안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선포했다. “오직 성경(Sola scciptur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혜(Sola gratia).” 이 사제가 바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이고, 그가 말씀의 능력을 전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우리를 자유케 하는 성경으로 돌아가자(Go back to the Bible that make you free)”고 선포하며 개혁을 일으켰다. 그는 오직 성경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에 있는 죄책감, 수치심, 두려움과 같은 영적 어두움으로부터 자유함을 누릴 수 있었다.
프랑스의 이디엄이기도 하고, 우리가 자주 접했던 구문이 하나 있다. “개와 늑대 사이”란 말! 이 말의 의미는 “모호한 시간, 혹은 땅거미가 지는 황혼시간”이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면 우리 눈앞이 캄캄해지기 때문에 앞에 있는 사물이 정확히 무엇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것이 개인지, 혹은 늑대인지 말이다.
우리 주변에서 늑대를 본다는 것은 쉽지 않지만 한번 상상해보자. 우리가 만약 인적이 드문 산속으로 휴양을 떠났는데, 그곳은 외딴 곳이어서 밤에 늑대가 나타나기도 하는 곳이다. 당신은 개와 함께 산책을 하고 있었고, 개를 맘껏 뛰놀게 하려고 풀어주었다. 그리고 이제 집에 들어가려고 개를 부르는데 멀리서 개의 실루엣이 보인다. 하지만 멀리 보이는 그 사물이 나의 개인지, 늑대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그를 데리러 가야 할지, 도망을 가야 할지 선택하기 힘들 때, 그 때 찾아오는 두려움이 모호함에서 오는 두려움, 불확실성에서 오는 두려움이다.
살면서 이와 같은 불확실성과 모호함의 두려움이 엄습해 올 때가 많다. 한치 앞을 알 수 없기에 생기는 두려움이고 공포이다. 하지만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바로 “빛”이다. 내가 걷는 한 걸음 앞에 빛이 비춰지면 그 길은 더이상 어두움의 길이 아니기에 비춰지는 그 불빛을 따라 걸으면 된다. 개와 늑대사이에 두려울 때 그것을 비춰주는 빛이 있으면 무엇인지 분별해내는데 어려움이 없어진다.
이 빛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것,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를 죄의 굴레에서 자유케 하는 방법도 하나님의 말씀이요, 어두움을 밝히는 빛도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믿고, 의지하는 것만이 우리가 영적 자유함을 누리고 빛 가운데 거하는 길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말은 크리스챤들에게 너무 흔한 말이고 당연한 말이어서 우리는 종종 성경을 많이 읽지 못해도 아무렇지 않게 느낀다. 하지만 성경을 많이 읽지 못하는 것은 아무렇지 않은 삶이 아니다. 성경을 읽는 만큼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이고, 성경을 읽지 않는 만큼 하나님과 나와의 간격은 그만큼 멀어져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하나님과 가까이 거할 것인지, 아니면 멀어진 그 상태 그대로 거기 머물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