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살던 소돔성에서의 이야기를 해보려한다. 창세기 19장에 자세히 적혀진 소돔성의 악함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배울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느낀 것 중의 하나가 롯이 부지중에 찾아온 손님 즉 천사들을 따뜻하게 대접하려고 집에 들였을 때, 그 동네 사람들이 롯의 집에 찾아와 에워싸며 그들을 끌어내어 상관하려 했다는게(창 19:5) 이상했다. ‘그 동네 풍습이 이상하다, 너무 악하다’ 이런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오늘에야 비로서 깨닫게 되었다, 왜 그런 이상한 죄악된 일이 행해지고 있었는지 말이다.
롯의 집에 찾아온 손님과 그들을 대접하려는 롯의 가족, 그리고 그 집을 둘러싼 동네 사람들. 이 장면에서 두 가지의 공간이 뚜렷히 보인다. 하나는 롯의 집안이다. 그 집안에는 적어도 여섯 명의 인물, 즉 롯과 그의 아내, 두 딸들, 그리고 천사 두 명이 있었다. 다른 하나의 공간은 롯의 집 밖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소돔성의 원근각처에서 노소를 막론하고 모인 사람들(4)이 있었다.
이 장면을 더 구체적으로 상상해보자. 집 안에는 분명 어둠을 밝히는 불이 있었을 것이지만, 집 밖에는 한밤중이라 어두컴컴했을 것이다. 거리의 가로등이 있는 시대가 아닐테니 온통 짙은 어둠이 깔려있을 것이다. 그리고 도덕적 규범 역시도 달랐다. 롯의 집안의 사람들은, 롯이 아브라함에게 배운 것처럼, 손님을 후하게 대접하는 태도가 있었다. 하지만 집 밖의 사람들은 자신의 동네에 머물게 된 외부인을 성적으로 학대하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여기에는 어떤 역사적 배경이 있다. 집단의 사람들이 공공장소로 나그네를 끌어내어 성추행과 성폭행을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이지만,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소돔성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고대 근동지방에서 섬기던 신들을 믿는 사람들이 살았었고, 가나안 사람들은 번성의 신으로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다는데 있다. 그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외설적인 공적 매춘은 공공연한 일이었다. 이러한 관습이 외부인에 대한 공적인 성범죄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었을 것이다.
거짓 종교로부터 거짓 가르침과 거짓 행동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상상해보라. 수많은 군중들이 모여 있는 공간에 한 두 사람을 납치해서, 한 가운데 세워놓고, 그들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장면! 그리고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그것을 보며 웃고, 즐기고, 떠들고, 더 하라고 부추기는 가학적인 모습들. 사실 이같은 모습은 영화 글레디 에디터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로마 시대 사람들에게 흔한 “흥을 위한 이벤트”였다. 그리고 로마 황제와 같은 권력자들은 이같은 이벤트를 만들어 군중들의 심리를 움직여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잡으려는 도구로 사용했다. 이런 하나하나의 사건들이 모여 전체적인 시대 분위기가 되었고, 소돔성에서 자행되는 악행 역시 그같은 과정을 거쳐 아무렇지 않게 행해지는 관습적 행동이 되었을 것이다.
달라스 윌라드가 그의 책, “하나님의 모략(Divine Conspiracy)”에서 비행기 조종사가 거꾸로 뒤집힌채 비행했을 때의 위험성을 영적으로 해석한 내용이 있다. 비행기 조종사가 똑바른 방향으로 운전을 하다가 상공에서 거꾸로 비행을 하는 경우들이 있다. 그리고 다시 원상태로 돌아와 정상 비행을 한다. 그런데 만약 비행사가 자신이 거꾸로 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채 상공으로 올라가려고 기어를 움직였을 때, 그는 곧 바닥으로 추락하고 만다. 그가 태평양 한가운데를 고공비행하고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하늘도 파랗고, 바다도 파란 상황이라면 자신이 현재 거꾸로 비행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지금 뒤집혀 있다는 상황을 모르면, 자신의 다음 선택이 곧 죽음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사실도 모르게 된다.
롯의 집안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롯의 집안이 마치 교회처럼 우리를 그리스도의 삶의 가치와 영적 원리로 살아가게 해주는 빛이 있는 공간이라고 가정한다면, 롯의 집 밖은 세속적 가치와 세상원리로 가득찬 어두운 사회일 수 있을 것이다. 소돔과 같은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통치 밖에 사는 사람들이기에 공공장소에서 악을 행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거짓 신과 거짓된 가르침 그대로 배우며 살아간다.
당신은 과연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속한 사람인가, 아니면 “밖”에 속한 사람인가?
만약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사람이라면, 그분의 가르침에 우선순위를 두는 삶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보다 세상이 주는 가치에 더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면, 당신이 지금 뭔가 거꾸로 뒤집힌 비행기와 같은 상태임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당신의 몫이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들을 때, 그것이 가벼운 농담처럼 들려지거나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진다면, 그것이야 말로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위험에 처해 있는 비행기와도 같다는 사실 역시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