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다보면 때로는 현대의 시대적 가치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들을 발견할 때가 있다. 우리의 상식과 지식과 지혜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씀들이 많은 이유는 성경은 하나님 나라애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A.W.토저는 “성경은 초자연적인 책이기에 초자연적인 도움이 없이는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바 있다. 

자신의 포도원에서 일할 일군을 찾기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간 포도원 주인의 이야기를 기억하는가? 포도원 주인은 품꾼들을 자기의 밭에 들여보내 일을 시키는데, 아침 일찍 일하러 온 일군이나, 세시, 여섯 시, 아홉 시, 십일 시에 온 일군, 모두 똑같은 품삯을 주었다. 그리고 아침부터 일한 일군은 이에 불만을 품고 주인에게 따져 물었는데, 주인은 “나는 너와 약속한 품삯을 주었다. 내 것을 가지고 내 마음대로 일군에서 삯을 주는 것이다. 나중에 온 사람도 너와 똑같이 삯을 주는 것이 내 뜻이다(마 20:1-16)”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적 관점에서 이 말씀을 살펴보면 이렇다. 나는 주 40시간 풀타임으로 일하고 월급을 받는데, 같은 직장의 다른 누구는 주 3시간만 일하는데도 나와 동일한 급여를 받는다고 가정했을 때, 과연 이것은 공평하고 정당한 일일까? 이런 질문과 똑같다. 

우리 사회에서는 일한 만큼 계산해서 월급을 책정한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나라의 계산법은 다르다. 이 땅의 주인은 일한 시간에 초점을 맞추어 급여를 계산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주인은 “양(quantity)”이 아닌 “질(quality)”에 초점을 맞춘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설명하신 이 포도원 주인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두 종류의 공간을 비교해볼 수 있다: 포도원 주인이 소유한 땅과 시장. 포도원 주인은 자기 땅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유재산이고, 때문에 사장의 원리와 법을 따르지 않아도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다.

시골에 사는 미국 사람들은 봄이 되면 정원을 예쁘게 장식하거나 밭을 만들어 채소와 과일을 재배해 먹는다. 나 역시 남편과 함께 밭을 만들어서 각종 채소를 재배해 먹으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몇시에 밭에 물을 줘야 하는지, 또 무슨 채소를 심어 재배해야 하는지에 대해 그 어느 누구에게도 허락을 받지 않는다. 내가 사는 집에 만든 밭은 나의 소유이기에 나의 마음대로, 내가 원하는대로 관리할 수 있다. 미 식품의약청에 문의해서 언제 물을 줄까, 무슨 채소를 심을까, 언제 거둘까를 물어볼 필요가 전혀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소유하신 하나님의 땅이다. 그곳에서는 하나나님 마음대로, 그분의 뜻대로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통치 영역이다. 그곳에서는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정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통치만이 존재한다(시 103:19).

예수님께서 이 포도원의 비유를 말씀하실 때, 그분은 급여정책, 근로윤리, 공정성과 같은 것들을 말씀하지 않으셨다. 다만 하나님의 통치, 그리고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만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는 과연 어느 곳에 속한 사람들일까? 시장의 원리에 따라 나의 가치가 결정되는 “시장”에 속한 사람인가, 아니면 양보다는 질에 더 가치와 의미를 두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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