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대일 제자훈련을 했을 때 기억에 남는 질문 중의 하나는 “당신은 바울같은 그리스도인가, 디모데같은 그리스도인인가?”였습니다. 이 질문의 의미는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난 경험이 있는가, 아니면 외조모 루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의 믿음을 이어받은 디모데와 같이, 모태신앙을 가진 꾸준한 믿음의 사람인가였습니다. 이런 질문은 우리 신앙의 현재모습을 점검하게 해주는 좋은 질문입니다.
위키피디아의 통계를 보니 미국 사람들의 73.6%가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믿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중 상당수는 “문화적 그리스도인”일 확율이 높으며, “영적 그리스도인”의 숫자는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습니다.
문화적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기독교적 배경을 가진 나라에서, 기독교 가정에서,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닌 경험을 가진 그리스도인을 말합니다. 이들은 일년에 한 번, 성탄절에 교회를 간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성경적 가치를 삶의 우선순위에 두고, 그 가치에 따라 살지는 않지만 그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여깁니다.
이와 달리 영적 그리스도인은 성경에서 말하는 삶의 가치를 우위에 두고 그 신앙적 원리를 따라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문화적 그리스도인인가요, 아니면 영적 그리스도인인가요? 우리의 신앙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지표가 되는 질문이길 원합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보면 빌립과 나다나엘이 등장합니다. 빌립도, 나다나엘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다나엘은 메시야의 오심을 간절히 기다렸지만 나사렛이라는 작은 동네에서 태어난 예수가 자신이 기다리던 메시야라고 믿지는 못했습니다. 구약의 말씀을 잘 배우고 아는 사람,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는 신실한 사람, 그러나 그는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만난 경험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빌립은 예수님을 경험적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예수님을 전하고 싶어서 나다나엘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와서 보라”고 기꺼이 말했습니다.
어찌보면 나다나엘은 문화적 그리스도인처럼 나면서부터 구약의 말씀에 익숙하고 그 배경에서 자라난 사람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사람이지요.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만난 개인적 경험은 없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빌립은 손을 내밀고 다가가 예수님을 만나보라고 권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교육을 통해 형성될 수 있지만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는 경험을 통해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문화적 그리스도인입니까, 아니면 영적인 그리스도인입니까? 당신은 빌립입니까, 나다나엘입니까? 우리 주변에 혹시 교회를 다니는 그리스도인이지만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난 경험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없습니까?
지금 우리는 주변을 살피고, 손을 내밀어 “와서 예수님을 만나보라”고 권해야 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