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해방은 미국 역사에서 중요한 역사적 변곡점이다. 수많은 남부의 흑인 노예들이 자유를 찾아 캐나다로 탈출을 시도했다. 그리고 그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두 강이 있다. 첫번재 강은 오하이오 강이다. 노예들이 주인을 피해 도망하며 자유를 향해 달리고 또 달려 첫번째 만나게 되는 장애물은 오하이오 강이었다. 이 강을 건너야만 캐나다로 가는 길이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강 앞에서 그들을 쫒는 수많은 추노들에 의해 붙잡혀 가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무사히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 추격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오하이오 강 주변에 늘어진 집들의 창문가에 있는 촛불때문이었다. 깜깜한 밤에 켜진 그 촛불의 의미는 “이 집은 안전하니 이곳으로 들어오세요.” 였다. 이들은 잠시 몸을 피했다가 다시 자유를 찾아 북쪽으로 달렸다. 그리고 만난 두 번째 강이 디트로이트 강이다. 이 강만 건너면 캐나다였다. 자유의 땅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되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입성하기까지 그들이 반드시 건너야만했던 두 강이 있었다. 광야의 거친 길을 걷고 또 걸어 만난 첫 번째 강은 홍해였고, 두번째 강은 요단강이었다.

이들이 건넜던 두 강은 곧 구원을 의미했고, 이를 영적으로 해석해보면 물세례와 성령세례로 살펴볼 수 있다. 다시말하면 구원은 두 단계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디도서에 따르면 이 구원은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3:5)이다.

첫 번째 단계인 “중생의 씻음”은 물세례를 의미한다. 우리의 믿음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을 때, 우리의 모든 죄는 씻김받았고, 또 의롭다하심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물세례가 곧 성숙한 그리스도인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의 자라남이 필요하다.

그래서 두 번째 단계인 “성령의 새롭게 하심” 즉 성령세례가 필요하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셨을 때,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리라(요 7:38)”고 말씀하셨다. 

이를 좀 더 신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중생을 얻고 모든 죄책으로부터 용서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죄책으로부터 자유롭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우리를 죄의 유혹에서 허덕이게 만드는 사단이 존재하고,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된 죄의 멍에와 사단의 속삭임은 여전하다. 이는 항상 우리가 죄의 위험성에 노출되어 살아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의 노예생활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향한 여정을 갈 때, 수없이 많은 도전이 그들 앞에 펼쳐져 있었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 밤에 찾아오는 매서운 추위, 사막의 야생동물들의 공격, 아멜렉군대의 위협 등과 같이 노예생활의 과거가 오히려 더 나았다고 불평할만큼의 큰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물이 없어 목마른 현실은 광야생활의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우리 역시도 동일한 믿음의 여정을 걸으면서 영적인 메마름에 목말라하고 있다. 우리 안에 있는 기쁨과 평안과 사랑과 인내가 사라져가고, 뭔지 모를 갈급함이 느끼지는 그 때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로 부터 내려오는 물이 필요하다. 

에스겔 47장에 나오는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우리의 영적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으로부터 하나님의 영이 흘러넘친다는 에스겔의 이 메시지는 곧 이스라엘의 성전으로 대체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수가 우리에게 흘러넘치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예수 그리스도가 승천하심으로 인해 교회는 예수님이 하시는 사역을 위임받은 공동체가 되었다. 다시 말한다면, 우리가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릴 때, 그곳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이 흘러 넘쳐 우리를 온전히 덮게 되고, 그 어떤 악한 영의 세력으로부터도 우리를 지키시는 영적 보호막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깊은 물에 들어가야 한다.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흘러나오는 생수는 온갖 종류의 영적 도전과 정신적, 육체적 질병으로부터 우리를 지키시고 치유하실 것이다. 교회에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그리스도인의 의무이자 의식적 종교활동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된 공동체에 속하여 그 안에 머무른다는 의미이며, 우리의 영혼이 성령으로 충만히 채워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021.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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