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 없는 소리가 없다니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말 중 하나가 “그냥 한 말이야”와 “별 뜻 없어”. 말 그대로 깊이 생각하지 않고, 혹은 즉흥적으로 내뱉은 말을 해명할 때 사용하는 말이기에 내가 한 말로 인해 상대방이 오해하는 일은 없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을 때 주로 이 말을 사용한다. 사실 나도 이런 말을 많이 한다. 그런데 말씀을 읽으며 다시 깨닫는 것은 무심코 반복하는 이 말속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의미를 담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같이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많으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고전 14:10).”
생각해 보니 그렇다. 세상에 소리의 종류도 많고, 하루 동안 우리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말도 참 많다. 그런데 그 말속에는 그것이 무엇이든 다 뜻이 담겨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좋은 말, 축복하는 말을 할 때 우리는 그 안에 상대를 향한 사랑의 마음이 담겨 있음을 의연 중에 표현한다. 마찬가지로 저주의 말, 부정적인 말, 소곤소곤하는 말속에도 우리는 대상을 향한 우리의 어떤 마음이 담겨져 있음을 부인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하니 내가 했던 말에 대한 부끄러움이 순식간에 밀려옴을 느낀다. 내 모든 말에 알게 모르게 뜻이 담겨 있다면, 그 말로 인해 분명 나는 사람을 살리기도 했고, 죽이기도(상처입기기도) 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우리가 자주 발견하는 말씀 중에,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마 22:32).”이다. 오늘 이 말씀이 내게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의미는 이런 것 같다. 만약 우리가 누군가를 죽이는 말을 한다면, 그 말로 인해 어쩌면 우리는 죽은 자, 하나님이 없는 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나님은 그런 죽은 자의 하나님은 아니다. 반대로 우리가 누군가를 살리는 말을 한다면, 그리고 그 말이 나를 살리고 상대방을 살린다면 그때 우리는 살아있는 자가 되고,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이 말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닌 것은 성경은 우리에게 불의와 추악과 탐욕과 악의가 가득하다거나 시기와 살인과 분쟁과 사기와 악독이 가득한 것, 수군수군하는 말이나 비방하는 것 모드 사형에 해당하는 죄목(롬 1:29-32)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말실수 혹시 뜻 없이 한 말이 사형에 해당하는 정도의 무게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 우리이기에 어쩌면 오늘의 말씀은 더욱 우리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의 말 한 끗 차이로 우리가 죽은 자가 될 수도 있고, 산 자가 될 수도 있으며,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음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