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운동이나 조깅을 할 때, 운동화에 작은 모래 알갱이가 있다면, 우리는 잠시 멈춰서서 운동화의 모래알을 털어내고 다시 걷거나 뜁니다. 왜냐하면 아주 작은 모래알이라 할지라도 발을 아프게 하기 때문에 우리가 편안히 걷고 뛰는데 불편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영적 여정이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우리가 믿음의 길을 걸을 때도 이와 비슷한 현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영적인 의미에서의 모래 알갱이는 죄책감과 수치심, 이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죄책감과 수치심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고, 또 그분이 주신 복음의 평안을 맘껏 누리지 못한채 살아가게 하는 이유가 됩니다. 그래서 분노, 절망적 미래, 걱정 등 건강하지 못한 영적 증후들이 마치 운동화에 모래 알갱이가 들어간 것처럼 우리 삶을 아프게 하고, 불편하게 만듭니다. 이같은 영적 고통은 MRI나 혈액검사와 같은 의학적 검사와 용어로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셨을 때,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다는 죄책감과 자신이 벗은 것이 부끄러워 하나님으로부터 숨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죄인된 인간이 죄책감으로부터 자유하도록 예수님을 보내주셨고, 예수님이 우리 모든 죄에 대한 페널티, 즉 죄책을 담당하셨기에 우리는 그분을 믿기만 하면 영적으로 자유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 앞에 온전치 못한 부끄러운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로 인한 수치심이 발가락 사이의 모래 알갱이처럼 계속 우리 삶에 남아서 영적 걸음을 한걸음씩 뗄 때마다 고통스럽고, 불편하고, 불안하게 만듭니다. 수치심은 여전히 미해결과제로 우리 인생에 남아 있기에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고 숨으려고 합니다.

반복적으로 속도위반을 하는 운전자는 벌금을 냄으로 인해 잘못에 대한 책임을 다했다는 자유를 누릴 수 있지만, 교통법규를 어기는 일이 반복이되면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하고, 또 포인트가 누적이 되어 그 점수를 회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에 “내가 왜 그랬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괴로워합니다.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를 위해 그분이 하실 일, 즉 죄책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해주시려고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다음은 우리가 할 일입니다. 구체적인 믿음의 행위로 하나님께 나가야 그분이 예비해주신 복음의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아무런 장애와 불편없이 믿음의 발걸음을 뗄 수 있습니다. 이런 걸음이 바로 “평안의 복음을 예비한 신발을 신은 자”의 발걸음이고, 이사야가 말한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의 발걸음입니다.

우리가 탄 구원의 배는 누군가가 해주는 서비스를 받아 누리는 호화로운 여객선이 아니라 노아의 방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실때, 우리 역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방주를 탄 노아의 식구들은 그 배 안에서 동물들을 키우며 자신의 역할을 최선을 다해 감당했기에, 마침내 하나님의 구원을 기쁨으로 맛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일을 이미 끝내셨습니다. 예수님을 이미 보내주셨고,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하셨습니다. 그 복음에 합당한 삶이 수반되야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복음의 신발을 신고 평안히 걷기 위한 준비가 되셨습니까?

202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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