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미네소타에서 발생한 시위가 점점 심각하고 과격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마다 견해와 관점이 다르겠지만, 어떤 이들은 정당한 시위라고 여기고, 또 다른 사람들은 폭력적인 시위라고 하기도 한다. 이 사건을 생각할 때마다 팝업처럼 떠오르는 장면은 얼마 전 뉴스에 나온 링컨 메모리얼 빌딩에서 시위를 하는 시민들과 그들을 막고 있는 경찰들의 모습이었다.

인종차별 혹은 민족차별과 같은 갈등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역사 속에 면면히 이어졌던 일들이었고, 2000년 전에 유대인들에게도 이같은 일이 빈번했다. 인종간의 갈등은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들간에도 있었고, 유대인들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들이 사마리아 사람이란 이유만으로 그들은 나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성경에서 우리가 만나는 또 하나의 장면은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이다. 사마리아 여인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해가 쨍쨍 내리쬐는 한 낮에 우물가로 물을 길러 왔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유대인인 예수님이 거기 앉아 있음을 보았고 순간 망설였다. ‘어떻하지? 우물에 가야하는데…’. 그리고 그녀는 주의깊게 예수님을 바라봤을 것이고, 예수님은 먼저 그녀에게 물을 달라 청하신다. 아마 예수님은 그런 그녀에게 지긋히 미소짓고 계시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당시의 풍습으로는 사마리아인은 유대인과 대화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을 거셨을 때의 주는 편안한 느낌과 미소는 “열린 대화”로의 첫 걸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겸손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또 이것이 서로간의 갈등과 긴장을 최소화하는 방법임을 배우게 된다. 

이 사마리아 여인 이야기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싶으신 것은 아마도 “열린 대화”가 아닐까 싶다. “와서 나와 이야기하자!”. 

그리고 경계심을 갖고 있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다가가신 예수님의 전략은, 

1. 긴장과 불편함이 없는 분위기를 만들고

2. 겸손한 자세와 태도를 보이시며

3. 판단하지 않는 마음을 표현하시는 것이다.

사회적 혹은 개인적 갈등은 각자의 기준과 가치를 통해 상대를 바라볼 때 생겨난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잘못된 의사소통 방식으로 자기의 것만을 주장하면, 이것은 오해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다양한 방식의 사회적 갈등을 발생시킨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개인적, 사회적,인종적 갈등을 경험할 때, 어떻게 평화와 사랑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새술은 새부대에(마 9:16)란 말씀이 우리에게 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으로 인해 새로운 영적 가치를 가진 우리라면, 이에 걸맞는 새로운 태도가 필요하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려 한다면, 우리 역시 세상을 향해 적합한 영적 태도를 가져야만 한다. 

마더 테레사는 “만약 당신이 다른 사람을 판단한다면, 당신은 그들을 사랑할 시간을 가지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혹시 우리가 다른 사람과 갈등관계에 있다면, 그들을 판단하고 정죄하기 이전에 예수님을 통해 배운 열린 대화를 위한 영적 원리를 기억했으면 좋겠다.  즉, 상대방으로 하여금 경계심을 갖지 않는 상태를 만들고, 겸손한 자세와 태도를 보이며, 판단하지 않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이전에 그들을 사랑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려고 노력하는 그리스도인의 적절한 영적 태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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