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기 위해 함께 산을 오르는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들은 제사를 지낼 장작을 가득 등에 지고 아버지와 함께 오르막 산길을걸으며, 아버지에게 질문합니다. “아버지, 불과 나무는 여기 있는데, 제사를 지낼 번제물은 어디었어요?”라고. 그리고 아버지의 대답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셨다”였습니다.

네, 바로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입니다. 요세프스를 비롯한 주석자들에 따르면, 아버지가 자신을 묶고 번제물로 바치려 할 때, 이삭은 나이가 18세~33살사이일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이 말은힘있는 젊은 청년 이삭이 자신을 산제물로 바치려는 아버지에게 저항하지 않고, 아버지의 결정을 순종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삭의 순종은 아버지의 말씀대로 따르는 것, 즉 히브리어에서 순종의 의미인 “듣는 것”을 실천한 삶이었습니다. 비록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있음에도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도 보셨고, 이삭의 순종도 보셨기에, 죽은 것과 다름없는 이삭을 다시 살리십니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님 이야기와 평행선을 이룹니다.

희생제사를 드리기 위해 부자가 오르던 모리아 산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셨던 실제 그 산이었고, 이삭이 나무를 지고 가던 그 길은 예수님이 십자가를지고 걸으시던 골고다 언덕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자신을 묶어 번제물로 드리려했음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아버지의 뜻에 순종했던 이삭처럼, 예수님도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옵소서”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번제물로 바친다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실 것이라는 믿음, 즉 부활의 능력을 이해하고 믿었기에 그 일을 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동시에 이삭은 비록 그가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는 못했을지라도, 아버지가 하나님의 사람임을 믿었기에, 아버지의 어떤 결정이든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종의 결과로 그는 하나님의 축복의 또 다른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의 이름을 위대하게 만드사 주변의 모든 나라,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존귀힘여김을 받는 영적인 복을 주셨습니다. 또 그는 마이다스의 손처럼무엇을 하든 번성케 되는 물질적인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목축업을 하는 당시 사회에서 우물은 큰 자산이었고 또 부의 원천이었는데, 그가 가는 곳곳에서 땅을 파면 우물이 터졌습니다.

이삭이 마음을 정하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처럼, 우리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이 곧 순종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는 순종의 사람, 즉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사람입니까? 혹시 지금까지 살면서 말씀을 많이 들어서 성경을 알만큼은 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데 이 사실도 아십니까? 어제 받은 만나, 즉 말씀은 다음 날까지 묵혀두면 썩어버립니다. 하나님은 매일매일 일용한 양식을 공급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자주 들어가지 않는 인터넷 사이트의 비밀번호는 잊어버리는게 당연하듯이, 우리가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주신 약속 또한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합시다. 적어도 우리가 출석하는 교회 주일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할 수 있도록, 또 일상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받아 누리는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망대가 되어줄 것입니다.

2023.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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