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C-2. 영성일기를 위한 자기표현적 글쓰기
자기 성찰적 글쓰기는 제시된 화제를 통해 관점을 세우고 그 관점에 입각하여 자신의 체험과 감정을 바라보는 것이며 전체 삶과의 연관성 아래 부분적인 체험을 회상하는 것이다. 자기표현적 글쓰기가 자기성찰적 글쓰기와 그 의미를 같이 하는 것도 영성지도의 큰 틀 안에서 자기를 바라본다는 관점과 같다.
삶은 경험의 연속이고 서사(書辭)는 경험을 정리하는 언어적 처리 과정이며 그 결과이다. 인간이 겪는 경험은 매우 복합적인 상황 속에서 다양한 맥락으로 이루어진다. 서사 활동은 경험을 정리하는 일이 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서사의 진폭은 매우 넓다. 경험에 질서를 부여하여 정리하고 경험을 뛰어 넘을 수 있게 한다. 선교사는 서사를 통하여 자기에게 일어난 일과 그의 경험세계 그리고 자기의 행동에서 드러나는 의미를 반추한다. 그리고 자신이 무의미했다고 생각했던 경험을 의미화하여 반성적으로 자기를 성찰하게 된다.
자기 성찰적 글쓰기는 관점에 입각하여 자신의 체험과 감정을 바라본다는 것인데 바라본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것이고 생각한다는 것은 자신의 체험과 감정을 그 대상으로 둔다는 것이다. 선교사의 자기 성찰적 글쓰기라 함은 선교사가 부르심을 받기 이전의 본래적 자신의 체험과 감정을 바라보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를 만드신 하나님의 관점에서 자신의 체험과 감정을 재해석하는 과정이라 할 것이다.
하나님이 귀히 쓰시는 사람들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선교사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예수님과 연합하여 예수님의 도움을 받을 때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 자신의 연약함을 예수님께 고백할 때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가 되고 그 연약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게 된다. 선교사의 자기 성찰을 위한 경험은 다양하겠지만 그 중에서 자전적 서사의 글쓰기는 서사행위를 통해 보이지 않는 ‘나’를 대상화하고 서사의 프리즘(prism)을 통해 과거를 되돌아보고 현재를 진단하며 미래를 설계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효과적인 방법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a. 거리두기 원리
거리두기란 문제의 감정과 사건으로부터 분리된 시간과 공간에서 자기를 관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에 함몰되어 있을 때는 객관성을 상실하기 때문에 자기를 직면하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표현적 글을 쓰기 위해 거리두기의 원리를 적용한다는 것은 솔직한 자기고백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영성일기를 쓰는 과정에서 자기의 내면 상태와 마음을 수도 없이 보게 된다. 의식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고 기록하는 과정을 통하여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 행위가 나타나고 기록해 놓은 자기표현적 글들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다시 한 번 자기 자신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체험하게 된다.
자신의 경험을 서사화한다고 했을 때 일상에서 겪었거나 현재 겪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겪을 수많은 경험 중 어떤 것을 표현해야 하는가에 관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의미있는 경험을 선정하고 그것에 자신의 관점을 담아내는 것이 경험의 서사화를 위한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자에게 있어서 경험의 서사화의 전략이자 내용은 바로 자신의 하루의 삶을 의식적으로 성찰해 보았을 때 강렬하게 남았던 경험을 의미한다. 하루 중의 삶에 대한 의식성찰이든 일주일간의 경험 속에서 가장 특별했던 경험에 대한 의식성찰이든 지금 이 순간 나와 거리를 둔 그 경험을 성찰함으로써 자기발견을 할 수 있다. 만약 우리의 경험이 한 편의 글로 남겨진다고 가정했을 때 그 경험은 분명 의미있고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간에 우리는 지난날의 감정적 분위기에 묻혀 살아가며 지금도 자주 그런 분위기에 얽매이고 있는 어린아이같은 면이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를 잊으려 노력하면서 오로지 현재에만 집착해서 살아가는 성인이라는 면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한 때 겪었던 그러한 어린 시절은 성인이 되어서 얻는 만족감을 방해하거나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고 괴롭히며 우리로 하여금 병을 앓게 하거나 혹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기도 한다.
선교사 멤버케어로서의 자기표현적 글쓰기에서 경험을 서사화한다는 것은 의식성찰을 통해 글을 쓰는 그 순간부터의 나의 기억 하나하나를 의미있는 기억으로 보존하고 그 안에서 과거의 나를 발견하는 특별한 작업이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here and now) 나와 아주 먼 거리에 있었던 경험을 가까이로 끌어와서 나를 성찰하고 성장하는 영적 원리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b. 경험반추의 원리
경험을 회상하고 정리하는 일 중 하나는 경험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기억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회상하는 것은 자기 정체성의 바탕이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게 됨으로써 비로소 나는 누구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정체성’이라고 말하는 인간의 자기동일성을 확보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기억이다. 기억하고 있는 모든 것을 통틀어 ‘자기’라는 존재는 의미있는 존재가 된다. 반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무의식이 ‘자기’의 일상을 통해 표출될 때 일반적으로 관계 안에서 갈등과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인간의 기억은 컴퓨터의 메모리와는 다르다. 단순히 자료만을 저장하는 장소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의 기억에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하나로 연결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게 하는 능력이 함께 있는 것이다. 성 어거스틴은 인간 영혼의 이러한 능력을 ‘상기의 힘(vis memoriae)’이라고 불렀다.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이 능력을 통해 인간은 과거· 현재·미래로 우리의 정신을 분산(distendo animae)시키고 그 결과 삶도 분산시켜 단지 흘러가버리고 마는 값어치 없는 것으로 만드는 ‘시간의 끔찍한 파괴성’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상기의 힘이 하는 이러한 일에 대해 “새로운 여러 가지 상을 지나간 것과 연관시키고 이렇게 해서 미래의 행위나 사건이나 희망을 구성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나는 이들 모두가 흡사 현존(現存)하는 것같이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렇듯 회상은 기억의 힘을 의미 있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역할을 한다. 과거와 현재를 나란히 겹쳐 놓음으로써 시간에 의해서 분산된 여러 가지 기억들을 모아 그때까지는 감추어졌던 또는 잃어버렸던 삶의 진실을 드러내 보여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리쾨르(Paul Ricoeur)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강렬한 쾌감이 단지 옛날의 기억들을 상기시켜주는 일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잃어버린 시간, 잃어버린 자기 자신, 잃어버린 삶의 의미와 가치를 되찾아 준다고 말했다. 그리고 회상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작업이자 감추어졌던 진실을 발견하는 일이고 그에 의한 구원을 이루는 힘이기 때문에 자기의 경험을 반추하는 과정을 종이에 적고 그 경험과 관련된 기억을 상세하게 쓰면서 자연스럽게 자기를 발견하고 통찰하게 된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든 글쓰기는 역사를 만들어낸다. 누군가의 기록의 조각들이 모여져 역사가 되고 그 역사 속에서 인류는 반성과 발전의 역사를 썼다. 지속적이고 규칙적인 경험반추의 과정은 한 개인이 성숙하고 전인(whole persons)이 되는 힘이 될 뿐 아니라 인류의 성숙과 발전에도 기여한다.
c. 진정성의 원리
선교사들이 자기 자신에 관해 글을 쓰거나 말할 때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 중의 하나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속사람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다. 자기표현을 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일 경우 반대로 자기표현이 어려운 사람보다는 좀 더 쉽게 자신을 오픈할 수는 있지만 이 경우에도 어느 정도 한계를 가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선교사라는 특수적 상황이 선교사들로 하여금 진정성 있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싫은 상처나 기억에 방어기제가 작동하여 진실을 고백하는 것을 방해한다.
하지만 자기표현적인 글쓰기라고 한다면 이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보이지 않으시지만 분명히 우리 인생을 감찰하고 계신 성령의 조명아래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이기에 그만큼 진정성을 담아낼 수 있게 된다. 자신의 경험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내가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성령이 바라보는 관점 사이에서 나를 성찰하는 것과 더불어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데 있어서 이 진정성의 원리는 서사가 갖는 큰 의미 중의 하나일 것이다.
선교사는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비롯된 상함이나 아픔은 다른 사람을 위한 치유자원이 되기 때문에 자신의 바른 인식 속에서 정직히 다루어야 한다. 이것이 다른 사람을 위한 섬김의 준비요 시작인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거부, 외로움, 자기-무가치함과 같은 상처에 대한 자기-인식을 살펴보고 십자가 앞에서 직면하는 용기가 필요하며, 가지고 있는 상처의 불완전한 자원을 통해서 완전성을 향해가는 여정을 맞이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자기표현적 글쓰기와 같은 영성훈련이 영혼돌봄 사역자를 위한 영적 성숙으로 이끌게 될 것이다. 인지(認知)의 정답에 도달하기보다는 가슴을 내려 행위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위하여 이 훈련이 필요하다. 진정성 있는 글쓰기로 자기를 서사화 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자기를 발견한다.
-다음 연재: 자기표현적 글쓰기가 주는 유익과 회복
(본 연재는 본인의 논문을 정리한 것으로, 홈페이지의 기능적인 면에서 각주를 달 수 없기에 생략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