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B-2. 게슈탈트 심리학
글쓰기 치료는 정신분석학과 분석심리학의 기본 개념이 그 뿌리가 된다. 그렇지만 실제적인 자기표현적 글쓰기 치료에서는 “나”라는 유기체적 인간을 이해하는 심리학적 근거로 게슈탈트 이론에 큰 영향을 받았다.
게슈탈트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행동은 각 요소를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고 본다. 인간의 지각은 다양한 자극이 하나하나 독립된 것이 아닌 그 각각이 상호관련을 가지는 전체로서 인지하는 것이다. 이것은 지각에서 뿐만 아니라 기억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게슈탈트 치료를 시작하여 발달시킨 펄스는 우리가 실존적 주체로서 책임을 회피하는 환경 지지를 버리고 자기 지지를 바탕으로 자신을 신뢰하고 책임지며 살아갈 것을 강조하였다. 그는 과거를 중심으로 지나치게 해석을 강조하는 정신분석을 비판하여 경험을 통한 자각을 통해 통합을 강조하는 이 치료를 발전시켰다. 즉, 타인의 기대에 따라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거나 이상적인 모습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모두 수용하여 진정한 자기로 살아가고 스스로 책임지는 삶을 중요하게 여겼다.
게슈탈트 치료의 이해를 위한 주요 개념을 몇 가지고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접촉(contact)이다. 인간이 환경과의 접촉을 통해 가장 시급한 게슈탈트를 완성해야 하고 건강하고 원만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 게슈탈트를 통해 우리의 에너지가 봉쇄되지 않고 사용하도록 요구된다. 자각을 통한 접촉을 방해하는 방어기제는 프로이트가 말한 방어기제와 유사하다. 게슈탈트는 개체의 욕구나 감정이 아니라 개체가 이들을 자신의 처한 상황과 환경을 고려하여 그 상황에서 실현가능한 행동동기로 지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자기의 감정을 정확하게 발견하고 표현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자기표현적 글쓰기는 자기의 정서적 글쓰기의 한 부분일 수 있다. 왜냐하면 선교사가 경험한 사건에서의 감정을 자각하는 것을 중요한 요소로 보기 때문이다.
자기표현적 글쓰기 방식에 게슈탈트 이론을 접목했을 때 기대되는 효과는 자기의 감정뿐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총체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글쓰기에는 정서 즉 감정을 중심으로 다뤄 문제를 푸는 방법이다. 게슈탈트는 감정·욕구·생각·신체감각·행동·경험 등을 서로 긴밀하게 연결하여 전체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기를 인식하고 자각하는 과정은 자신을 스스로 조망할 수 있는 안목을 열어주고 궁극적으로 건강한 삶으로 이끈다.
게슈탈트 심리학에서 말하는 건강함이란 강하고 분명한 게슈탈트를 형성할만한 능력을 가진 것을 의미하고 자기표현적 글쓰기에서 말하는 상담은 선교사가 현실을 어떻게 자각하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둘째, 전경과 배경(figure and ground)이다. 인간이 어떤 대상을 인식할 때 관심 있는 부분은 지각의 중심으로 떠올리고 나머지는 배경으로 보낸다. 어느 한 순간에 관심의 초점이 되는 부분을 전경이라고 하고 관심 밖에 놓여 있는 부분을 배경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개체가 목이 마르면 그 순간 목마름이 전경으로 떠오르고 다른 것은 잠시 배경으로 사라진다. 건강한 개체는 매순간 자신에게 중요한 게슈탈트를 선명하고 강하게 형성하여 전경으로 떠올릴 수 있는 데 반해 그렇지 못한 개체는 전경과 배경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한다. 즉, 특정한 욕구나 감정을 다른 것과 구분하여 강하게 게슈탈트를 형성하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행동목표가 불분명하며 매사에 의사결정을 잘 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의 관심은 배경이 아니라 전경 다시 말해 현재의 게슈탈트가 되며 무의식적인 것은 현재 내 의식에 존재하지 않는 생명력이 없는 존재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본 연구자는 게슈탈트 심리치료가 무의식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실용적인 관점에서 무의식을 적용할 수 있도록 그 가능성을 열어두었다고 본다. 정신분석학자였던 펄스 역시도 무의식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서 현재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분석학과 분석심리학의 토대 위에서 현재를 새롭게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은 오히려 응용심리학의 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동시에 자기표현적 글쓰기 치료의 완성이 될 수 있다.
셋째, 게슈탈트 심리학이 가진 또 하나의 이론적 특징은 미해결 과제의 해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내담자는 자기표현적 글쓰기의 과정을 통해 자신이 미처 해결하지 못했던 과거의 일을 현재에 발생한 어떤 사건이나 상황을 통해 자각하고 통찰하게 된다. 미해결 과제나 표현되지 않은 정서가 지금 상황에서 지각되거나 다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현재의 자각과 효과적인 기능을 계속 방해한다. 회피는 사람들이 미해결 과제에 직면한다거나 미해결 상황과 관련 있는 불편한 정서를 경험하는 것을 방해하는 데 사용하는 수단이다. 미해결 과제가 많아질수록 개체는 자신의 유기체 욕구를 효과적으로 해소하는 데 실패하게 되고 마침내 심리적·신체적 장애를 일으킨다.
여기서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이 “지금-여기”이다. 미해결 과제를 찾기 위해 무의식을 심층적으로 탐색하려하지 않아도 이 미해결 과제는 끊임없이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며 “지금 여기”에서 수면 위로 떠오른다. 게슈탈트 심리치료에 임하는 대상이 선교사라면 다만 이것을 회피하지 않고 자각하면 된다. 선교사의 행동, 표정, 태도, 사용하는 언어, 타인과의 관계 속에 나타난 상호작용 등을 주목해서 보면 된다.
선교사가 지금-여기에서 느끼는 감정을 충분히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은 채 살아간다면 우울이나 불안과 같은 병리적인 현상이 나타난다. 또한 심리기능 역시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효능감에, 사회성에 그리고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자기의 행동과 자각반응을 통제할 힘을 상실한다. 또 감정에 대한 인식이 낮은 선교사일수록 스트레스 상황에 부딪치면 감정 반응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으며 때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감정표현과 반성적 글쓰기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글쓰기인 자기표현적 글쓰기가 치료적 힘을 갖는 것은 해결되지 못한 채 저장된 감정의 처리과정을 되짚어본다는 데 있다. 특히 선교사가 자신의 생각에 대해 명료하게 밝히는 이 같은 글쓰기는 장기간 지속되는 심한 정신적 충격을 치료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선교사가 겪는 문제 중 일부는 감정과 생각을 정리하고 처리하지 않은 채 어딘가에 저장해 두기 때문이다. “모든 생각과 감정을 글로 털어 놓으면” 회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으며 모든 감정을 정리하는 과정과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전체 상황을 되돌아보고 생각하는 과정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선교사에게 있어서 게슈탈트 심리학에서 강조하는 지금-여기는 다른 개념들과 더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채연숙의 말에 따르면 선교사가 “과거로의 퇴행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현재를 자각하고 통찰하는 것이 치료의 힘이다. 그리고 게슈탈트 이론이 가진 특징이 글쓰기 치료에 매우 유용하게 수용되면서 글쓰기 치료는 하나의 독립적인 치료 이론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 이론으로 볼 때 자기표현적 글쓰기를 하는 선교사는 자신이 서술한 이야기의 텍스트를 통해 과거 이야기를 현재 상황으로 불러와 자신의 문제를 재경험함으로써 이들 사이에 불일치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자기표현적 글쓰기 치료에서는 “지금 기분이 어떠한가?”라고 묻는 의식적 질문이 중요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게슈탈트 이론에서 말하는 ‘미해결 감정’이나 ‘문제’들을 스스로 인지하고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거리두기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동시에 ‘알아차림’을 경험하게 된다.
이 ‘알아차림’은 현재의 기분이나 느낌 그 이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현상을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원래 내가 이랬구나’를 느낄 때 이것이 곧 게슈탈트에서 말하는 ‘알아차림’이 된다. 이는 곧 관심을 의미하기도 한다. 인간은 관심을 통해 알아차리게 되고 관심에 의해 행동이 변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선교사는 자기의 관심 영역을 ‘자기’가 아닌 ‘타인’에게 둔다. 그로 인해 선교사는 자기를 알아차리기 전에 타인을 알아차리기를 먼저한다. 선교사의 자기표현적 글쓰기 치료에서는 선교사가 자기를 알아차리기 위해 자기를 표현하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하며, 선교사는 어떤 사건을 지금 이 순간 충만하게 경험해야만 자기에 대한 ‘앎’이 생겨난다. 이 앎은 인간의 이성과 감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완전히 아는 것이야 말로 자기의 경험을 확대시키거나 축소시키지 않는 온전한 ‘자기’를 아는 것이다.
글쓰기 치료는 게슈탈트 심리치료가 인간의 모든 행위를 다양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유기체로서 몸과 마음의 평형 상태를 유지하려 한다는 동적 평형상태 기능이나 심리적 균형성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왜냐하면 지속적으로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정적 평형상태인 동시에 그에 대한 소원충족의 행위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과의 화해나 자신의 유년 또는 과거와의 화해를 위해 글을 쓴다. 그 글들은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심층의 말들인 경우가 많다. 더욱이 이 글들은 대부분 지나간 일들이지만 현재 뇌리에 남아있는 잔상들이다. 하지만 자기표현적 글을 쓰는 과정에서 필자는 현재 시점에서 과거의 그 사건을 바라볼 수 있게 되고 자기만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펄스가 게슈탈트 심리치료를 시작하게 된 것은 유기체 이론에 대한 흥미와 관심 때문이었다. 전체로서 하나의 통합을 이루는 유기체적 관점으로 인간을 본다는 것은 성서적 관점에서의 인간 이해와 그 흐름을 같이 한다. 마찬가지로 게슈탈트 치료를 통해 발견하게 된 자기 이해는 하나님이 흙으로 빚으신 인간의 코에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어 인간이 “생령”이 된 것과 같으며 이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의 ‘자기’로의 회복을 위한 첫 걸음이 된다.
-다음 연재: 자기표현적 글쓰기 치료의 요인
(본 연재는 본인의 논문을 정리한 것으로, 홈페이지의 기능적인 면에서 각주를 달 수 없기에 생략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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