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A-2. 선교사에 관한 사회·심리적 이해
사회학자 에밀 뒤르케임(Emile Durkheim)은 사회를 두 사람 이상이 모여서 만들어낸 집단이라고 정의했다. 본 연구자는 선교사를 이해하기 위해 사회·심리적으로 접근할 경우 그들이 속한 선교사 집단의 특성과 심리적 문제가 무엇인지를 규정짓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그리고 선교사들의 여러 가지 다양한 행위, 그들이 가진 관습이나 조직문화, 그리고 그들의 사회를 변동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접근이 바로 이 영역이다. 본 장에서는 이들이 사회·심리적으로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고찰하도록 하겠다.
a. 선교사의 특수한 사회·심리적 배경
사람들은 종종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고 싶은 간절함이 있다. 마음속에 간직한 생각이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털어놓게 되면 속이 후련해지는 경험도 한다. 이런 후련함은 털어놓기를 통해 감정의 정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속이야기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심리적인 고통이며 에너지를 건강하게 소모하지 못하는 방해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특히 남성이 슬픈 감정을 외부에 표출하는 것을 수치스럽거나 성숙하지 못한 행동으로 비난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의젓함과 절제력을 자랑스러워하면서 감정 표출을 거부하고 눈물을 연약함의 표시로 평가절하한다. 이 같은 배경을 감안한다면 사역의 최전방에서 적극적인 사역을 하는 선교사에게 있어서 자기노출이 얼마나 쉽지 않은 선택인지 가늠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선교사가 강도를 당해 극심한 불안감과 공황장애를 경험하더라도 패배한 선교사로 비춰지지 않기 위해 보고서에는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여 기록한다. 대신 하나님이 어떻게 지키고 보호하셨는지 기도편지에 반드시 첨가한다. 사건은 보고되지만 상처받은 선교사의 심령은 보고되지 못한다. 또 다른 예를 들면 선교사의 아내가 치료를 요하는 우울장애가 있는 경우 선교사는 그것을 보고하기를 두려워한다. 우울증의 경우 신체적 증상을 동반하기 마련이므로 종종 신체적 질병으로 보고되어 선교사는 다른 선교지로 옮기거나 안식년, 학위과정 이수 등의 가장된 목적으로 사역을 쉬기도 한다. 선교사의 신체적 질병은 용납되지만 심리적 질병은 영적 문제로 간주되어 깊이 감추어지기 십상이다.
또한 선교사의 사역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기도와 재정을 후원하는 교회의 입장에서는 선교사가 직면한 전인적인 어려움, 즉 신체적·심리적·영적 문제는 더 이상 선교지에서의 사역을 기대할 수 없게 만든다. 교회로서는 더 건강한 선교사에게 물질과 기도를 후원하여 선교비에 부합한 결과물을 얻는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현실이 이와 같을 때 선교사는 당면한 자신의 문제를 노출시키기를 극도로 꺼리게 된다. 자기노출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또 만약 자기노출을 한다 할지라도 그 수위 조절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제한적이다.
b. 선교사가 경험하는 스트레스와 그 요인
많은 선교사들은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선교학자 아키 림(Ah Kie Lim)은 선교현장에서 수년 간 사역을 한 이후에 사역을 향한 열정을 상실하는 선교사들을 보아왔다. 그 이유를 탐색한 결과 그들로 하여금 사역을 포기하게 만들었던 내재된 갈등들과 스트레스들이 있음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선교학자 안케 티씽(Anke Tissingh)도 선교사들의 사역에 악영향을 미치는 과다한 스트레스 요인들을 접하게 되지만 그 스트레스 요인들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은 쉽게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말하면서 선교사들에게 부정적이고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에 대한 대처가 쉽지 않음을 지적하였다. 그들이 겪고 있는 스트레스의 요인은 다음과 같다.
(1) 문화에서 오는 스트레스
이문화(異文化) 충격이란 사람이 한 문화권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 접촉할 때 일어난다. 이 충격은 그 정도가 다양한데 친숙한 환경으로부터 더 멀리 떨어질수록 강도가 크게 느껴진다. 선교사가 새로운 문화권에서 경험하게 되는 첫 번째 충격은 의사소통의 불능이다. 이방인으로 새로운 세계에 들어오면서 갑자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는 수단을 잃어버리게 된다. 가장 단순한 말을 하려 해도 어린아이 같이 애를 써야 하고 계속적으로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문화충격의 시발점인 언어충격을 극복하지 못하게 된다면 선교사가 경험하는 스트레스는 악순환을 거듭하게 된다. 현지인과의 어울림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현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더불어 살아가기 힘들다.
(2) 일상생활과 사역에서 오는 스트레스
선교사가 되기 이전에 그들은 장보기, 요리, 은행일, 세탁, 우편물 처리, 치과 치료, 크리스마스 장식 구입, 여가를 즐기는 것 등을 효율적으로 해왔다. 그러나 새로운 환경에서는 아주 단순한 일조차도 커다란 정신적 부담이 되고 많은 시간을 소모하게 된다. 낯선 문화권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인생은 사역이라는 원대한 목적을 수행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단순한 생존을 위한 노력과 갈등의 연속이라고 보면 된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문화와 생활에 대한 적응력은 빨라지고 또 익숙해지겠지만 그에 따른 또 다른 좌절도 점점 커진다.
(3)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선교사는 고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과의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은 물론 파송교회와 개인후원자들과 지속적으로 연락하여 규칙적인 선교보고를 하고 자신이 성실하게 사역하고 있음을 보고해야 한다. 동시에 선교사는 사역지에서 동료 선교사, 교회지도자, 현지 교회 성도들과 이웃들 등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 나간다. 이렇듯 현지인과 관계를 맺기 위한 선교사의 집중력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에너지 소모가 많아지며 그럴수록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과도해진다.
(4) 정체성 상실에서 오는 스트레스
본국에서는 직위, 학위, 그리고 다양한 집단의 회원 자격 등을 가지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고 중요한 존재로 인정받았다. 새로운 환경에서는 이 모든 옛 정체성이 사라진다.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선교사로 시작하는 새로운 삶과 적응을 위한 노력 그리고 과도한 헌신은 선교사가 경험하는 갈등과 회의(懷疑)의 원인이 되고 선교사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장애물이 된다. 다양한 변화 속에서 자기의 내면의 연속성을 지켜나가기 위한 혼란과 스트레스가 있다.
c. 선교사의 사회·심리적 위기
폴 하버트(Paul G. Hiebert)가 지적하는 타문화권 선교에서 받는 스트레스의 가장 심각한 결과는 우울증과 실패감이라고 한다. 선교사는 새로운 문화권에서 오는 혼동된 상황과 새로운 생활양식을 배워야 한다는 긴장으로 인해 당황하게 된다. 여가 생활을 즐길 시간이 없다. 무엇보다도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는데 선교사가 여유 있게 쉰다는 것이 합당한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리고 실패했을 때 그들을 돌보아줄 사람 또한 아무도 없다. 더욱이 비현실적인 기대감이 그들을 짓누른다. 젊었을 때는 저 대양을 넘어가면 멋진 선교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들이 여전히 평범한 사람임을 깨닫게 될 때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윌리암 케리(William Carey)의 부인인 도로시 케리(Dolosi Carey)는 자녀의 죽음과 스트레스를 주는 환경 때문에 여러 가지 질병을 앓았으며 나중에는 편집증으로 고생했다. 또한 CIM(China Inland Mission, 현 OMF의 전신)의 창시자인 허드슨 테일러(Hurdson Taylor)와 A. B. 심슨(A. B. Simson), 아도니람 저드슨(Adoniram Judson), 아프리카 선교 탐험가 리빙스턴(David Livingsten)의 부인 메리 리빙스턴(Mary Livingsten)은 우울증을 앓았다고 한다. 더욱이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면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문제를 더 악화시키게 되는데 이는 실패의 두려움 그 자체가 에너지를 모두 소모시키기 때문이다. 패배하면 내가 잘못되었고 하나님의 일에 적합하지 못한 자라는 결론을 짓게 된다.
때로는 자신의 연약함을 위장하는 가면을 쓰기도 한다. 한동안은 다른 사람들을 속일 수 있고 때로는 자기 자신까지도 속일 수 있다. 드와이트 칼슨(Dwight Carson)은 “해결되지 못한 다른 갈등과 마찬가지로 가면을 쓰는 것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두려움 이외에도 초조, 염려, 피곤, 변명, 비난 그리고 때때로 새빨간 거짓말, 기만 등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가면 벗기를 거절하면 내적 갈등과 피로가 생겨날 뿐만 아니라 자신과 타인의 성장 모두를 가로막게 된다.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은 다른 사람의 가면 벗기를 기대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가면을 벗어야 한다. 그들이 자신의 더러운 발을 기꺼이 먼저 내놓을 때에만 다른 사람도 안심하고 자기 자신과 자신의 필요를 내 놓을 수 있다. 선교사는 자기를 규정하는 사회·문화적 환경 속에서 기꺼이 자기 가면 속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용기를 가져야 하고 사회·심리적으로 자기 노출을 꺼리는 분위기 속에서 그 흐름을 바꾸는 건강한 사명자가 되어야 한다.
-다음 연재: 선교사의 전인적 영성발달
(본 연재는 본인의 논문을 정리한 것으로, 홈페이지의 기능적인 면에서 각주를 달 수 없기에 생략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