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막론하고 사람들 사이에는 수많은 분열과 분리가 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는 정치적 이념, 사회적 신념, 혹은 기독교 신학 해석의 다양성으로 인해 갈등하고 분리된다. 교회는 작금의 분열과 다른 거룩한 공동체로서, 함께 모여, 떡을 떼고, 기쁨으로 교제하며, 그리스도를 믿는 순전함 믿음을 가지는 그런 공동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교회 내의 갈등과 분열을 경험하고 있고,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서신을 보냈을 때도 바로 이같은 상황이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내에서 다툼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에게 편지를 썼다. 상황을 보니 성도들이 각자 자신의 믿음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 그들의 배경이 어디냐에 따라 분리되어 있었다. 고매한 신학적 지식과 지혜를 따르는 사람은 “나는 바울을 따르련다” 말하고, 유대 전통에 입각한 정통성을 중심 가치에 두는 사람들은 기적과 표적과 같은 케리그마틱한 방식을 강조하며 “나는 베드로를 따르리라” 말하고, 그리고 뛰어난 지식과 언변에 가치를 두는 사람들은 “나는 아볼로를 따르리라”고 말하며 서로 다투고 있었다. 이들은 십자가에게 달리신 예수님을 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만으로 충분치 않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이들에게 십자가의 도는 “거리끼는 것이요 미련한 것(고전 1:23)”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요구에 부합하는 더 나은 길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이들의 주요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보다는 지혜와 표적에 더 중점을 두었다는 데 있었다. 그래서 고린도인들이 바울에게 표적과 지혜를 구할 때,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고전 1:24)”라고 강조했던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만약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충분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수많은 영적 문제에 당면하게 될지 모른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유혹의 길로 쉽게 넘어진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 말을 야고보의 말로 인용하자면, “오직 우리가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약 1:24)”이다. 미혹된다는 말의 헬라적 의미는 “미끼가 된다”는 뜻이다. 

낚시를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낚시를 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 것이다. 미국에서는 일단 낚시를 하기 위해서는 낚시 자격증을 사야하고, 이것은 매년 새로 사서 갱신해야 한다. 라이센스가 있으면 이제 낚시를 갈 수 있는데, 낚시를 하기 위해서는 낚시대, 찌, 미끼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물고기를 유인하기 위해서 지렁이를 사용해야 하고, 미끼가 물 위 아래로 움직이는 것을 보며 물고기가 찌를 물었는지 안물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사단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우리를 미혹하고 유인한다. 비단 우리에게만이 아니라, 사단은 예수님이 40일 금식후에 주린 예수님에게 찾아와 음식으로 미혹하려 시도한 것처럼, 유혹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사단은 우리 안에 불만족스러운 감정을 미끼로 사용한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으로 충분하지 못하고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계속 추구하려 한다면, 우리를 유혹하려는 세력이 우리를 유혹할 것이다. 그들의 미끼와 속임수는 우리로 하여금 불평을 하게 만들고 부정적인 제안에 동의하게 만든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으로 하나될 수 있고, 조화를 이루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 가치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자신이 가진 생각과 가치 혹은 의로움을 주장하기 보다는 개개인의 삶을 존중하며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기 때문이다(1:30).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오늘 하루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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