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의 진실함 혹은 완전무결함을 말하곤 한다. 그만큼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기대감이 있다는 말일 수 있다. 이 진실함에 담긴 의미는 정직함과 높은 도덕적 기준을 따라 사는 삶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하는 가장 가치있는 성품 중의 하나로 믿는다. 진실하고 완전무결함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중요한 가치 요소이긴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구원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이것이 인간을 구원해주지는 못한다. 우리에게 있어서 핵심적 가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진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누군신지, 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곧 영생의 요소이다(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닌 것이니라).
우리 주변에서는 이 진실함의 가치를 따라 살아가는,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들이 많다. 비폭력, 무저항운동을 주장하며 세계적인 영향을 미친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가 그러하고, 윤리와 가치, 건강한 삶에 대해 강의하며 수많은 군중을 이끌고 다니는 티벳의 영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Dalai Lama)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리고 무슬림 군대의 지도자였던 살라딘(Saladin)도 있다. 살라딘은 1099년 십자군 원정대가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여자와 아이들을 포함한 40,000명을 학살했던 것과 반대로 그가 다시 예루살렘을 탈환했을 때 20,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평화롭게 예루살렘을 떠나도록 허락했던 존경받는 지도자였다.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해 보면, 그리스도인들보다 훨씬 윤리도덕적인 삶을 살고, 진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종교인들이 많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성경에서는 이러한 사람들의 구원에 대해 말해주고 있지는 않다.
그렇기때문에 우리의 고민은 더욱 구체적인 질문으로 연결된다.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 그 가치가 그리스도인의 진실함을 지키는 것인가, 아니면 영생을 바라는 것인가?
부자 청년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는 부자였고, 윤리적으로도 존경받는 삶을 사는,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으며, 자신이 진실하게 살아간다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때문에 그는 예수님 앞에 나아와 더 좋은 사람(good man)이 되는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그에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말씀하시며, 가서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그러나 그는 슬픈 기색을 하며 돌아갔다.
예수님은 그 부자 청년에게 이런 말씀을 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나는 너에게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삶, 진실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선생이 아니란다.” 여기에는 우리를 포함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실수를 간파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담겨있기도 하다. 그리스도인은 인테그리티(Integrity)를 추구해야 하지만 그것이 궁극적인 신앙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되며, 그리스도인의 삶의 우선순위는 도덕적 완전함을 추구하는 것 이상의 가치, 즉 겸손히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기독교는 도덕적, 윤리적으로 완전무결한 종교가 아니라 온전한 구원을 위한 믿음의 종교이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회개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진실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그분 앞에서 우리의 삶을 성찰하고 회개하는 것이 더 낫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세수를 하듯이, 매일의 회개는 우리의 구원을 끝까지 지켜나가는 그리스도인의 가치있는 삶의 가장 최고의 요소가 될 것이다.
그리고 회개를 통해 우리의 죄된 마음을 씻어내면 성령님께서 그의 삶에 완전히 내주하시게 되며, 그런 성결한 삶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하는 차원 높은 그리스도인의 삶, 즉 인테그리티(integrity)를 넘어선 영생(Eternity)의 삶이다.
(Sunday, May 31,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