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크리스천의 마땅한 삶의 이유이고 동기입니다. 그리고 그분과 어떤 사랑의 관계를 맺느냐가 우리의 영적인 삶의 질을 결정합니다.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하실 때, 그 옆에 있었던 세 명의 제자들의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또 그 사랑을 지켜나가는 것이 우리의 운명을 어떻게 결정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먼저 요한은 예수님과 어느 때나, 어떤 대화든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1차적인 관계를 맺은 인물이었습니다. 성경에서도  “예수님의 제자 중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 친밀함을 보여줍니다.

또 다른 인물은 베드로입니다. 물론 베드로도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그분과 아주 가깝고 좋은 관계였지만 예수님이 살아생전에는 요한만큼의 친밀함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팔려갈 것을 말씀하실 때 이를 궁금해하던 베드로는 예수님께 직접 묻지 못하고 요한에게 머릿짓을 하며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예수님께 한 번 물어봐”(요 13:24)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직접적으로 주님과 대화하기보다는 간접적으로, 즉 예수님과 더 직접적으로 친밀한 요한을 통해 정보를 얻기를 기다리는 그런 관계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가롯 유다가 등장하는데, 그는 제 삼자적 인물이었습니다. 이는 직접적으로 예수님과 소통하기보다는 어떤 상황과 연관시켜 예수님과 대화하거나 중계자를 통해서 정보를 얻거나 연결점을 찾는, 그런 관계를 말합니다. 가롯 유다는 돈궤를 맡고 있었기에 언제나 돈과 관련해서, 혹은 그것을 매개로 예수님과 대화하곤 했었습니다.

물론 예수님과 제2, 제3의 간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관계에 있을 때에 생기는 문제점은유혹에 취약하다는 데 있습니다. 베드로는 닭이 세 번 울기 전에 예수님을 부인한 경험이 있었고, 사단이 유다에게들어가 예수님을 판 것은 더 최악의 경우의 수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직접적인 관계, 1차적인 관계를 발전시키지 못한다면, 언제든 우리는 사단의 유혹에 노출되어넘어질 수 있습니다. 사단의 영향력이 우리 생각에 미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경우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죄가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모두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을 따랐습니다. 가롯 유다 역시 주님과의 깊은 관계를 발전시키고 성장하고 싶은 헌신된 마음으로 그 사역을 시작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의 동기가 주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닌 돈과 권력으로 더 향해버렸을 때, 그는 예수님을 배신하게 되었고, 곧 그것이 그의 운명을 결정지었습니다.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마 6:21)”고 하신 말씀처럼, 우리 마음의 동기가 어디 있느냐가 우리의 선택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요한, 베드로, 유다, 이 세 인물을 통해 주님과 우리의 관계를 점검하길 원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뜻을 알기 위해직접적으로 대화하고 교제하는 1차적 관계를 맺고 있습니까? 아니면 누군가의 도움으로 주님의 뜻을 알고, 배우고, 경험하는 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습니까?

이제 우리는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또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말입니다. 주님과 더 가까이, 더 친밀하게 만들어가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2024.03.10.

@ Photo on UnsplashBill Ec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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