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 교사인 니고데모는 수많은 유대인들을 만나 하나님의 말씀과 유대인의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지만, 그 누구도 명확한 답을 주지 못했다. 그 역시도 예수님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다. 예수님이 나타나시기 전에는 그 누구도 하나님 나라에 대해 예수님처럼 가르쳐준 사람이 없었고, 또 자신이 가진 율법의 지식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현재, 자신의 주변에서,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며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고 사람들에게 이해시켜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 궁금증을 가지고 있던 차에 그는 예수님을 만나러 갔고, 예수님과 함께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가 예수님을 찾아간 이유는 그가 영적인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지식적으로 알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그는 궁금했다. 예수님은 정말로 누구실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는 무엇일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그에게 그가 정말로 원하는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가르쳐주시기 보다는 오히려 그를 영적 변화의 길로 초대하셨다. 예수님의 초대는 그의 의도와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지 못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 3:5)”고 말씀하셨다.
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우리 자신의 죄된 본성을 인정하고, 회개함으로 예수 앞으로 나오는 것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우리의 죄와 형벌이 사하여 지고, 의롭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될 때 비로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된다. 그러나 이런 물 세계가 곧 영적인 성숙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의 성도들에게 성령 안에서 자라나야 한다고 말했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일은 우리를 성화시키고, 성숙시키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인시켜 준다(롬 8:16).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성화의 과정을 거쳐야 하고, 이것은 곧 영적 성숙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과 그 의미를 같이 한다.
물세례가 마치 대학 입학을 위한 입문이라면, 성령세례는 대학생으로서의 실제적인 학교 생활이다. 학생이 전공에 대한 공부를 등한시한다면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학생은 학교로부터 입학 허가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성적으로 명예롭게 졸업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의 삶도 구원을 이루기 위한 단계를 거쳐야만 한다. 먼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고, 그 다음으로는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동화속 피터팬 이야기를 생각해보자. 피터팬의 딜레마는 그가 날수 있는 재미, 그 능력을 계속 가지려면 그는 자라나서는 안되고 계속 어린 아이 그 상태로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그가 성장하고 성숙하는 길을 선택한다면 당연히 하늘을 나는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피터팬 증후군도 이와 같다. 몸은 어른이지만 마음은 어린아이와 같은 것이다. 이 증후군이 정신병리는 아니지만 성인들이 감정적으로 미성숙한 상태로 있는 경우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 피터팬 증후군의 주된 특징이 뭘까? 그것은 성인인 자신이 감당해야 할 책임이나 헌신을 회피하거나 부인하는 것이다. 계속 하늘을 나는 능력을 갖고 싶은 마음은 재미를 추구하는 자기 중심적인 삶을 방식을 유지하고 싶은 것이고, 반대로 성장과 성숙은 하나님의 나라와 사람들을 위한 책임을 감당하는 것이다.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져야 할 십자가를 기꺼이 감당한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매일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르라고 권하고 계신다. 예수님의 우리를 향한 초대장은 비단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의 초대 뿐만 아니라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나라는 초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