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수없이 많이 모르는 전화번호로 전화가 걸려온다.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수없이 많은 댓글이 달리지만 대부분은 스팸으로 처리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상한 댓글들이다. 그리고 얼마전 한국에 계신 엄마에게 나인것처럼 가장을 해서 돈을 빼가려는 보이스 피싱이 있었고, 이는 결국 내가 사용하는 SNS가 해킹당해서 생긴 일이었음이 밝혀졌다. 이러한 전화들은 우리의 정보를 이용하여 돈을 빼내려는 속임수이고, 이들은 우리가 자신들의 계획에 속아 넘어갈 때까지 끊임없이 연락을 한다.
그런데 성경에도 이러한 일들을 많이 언급하고 있다. 성경의 표현을 빌리지만 우리를 영적으로 공격하는 “마귀의 간계(엡 6:11)”가 분명히 있다. 사단은 끊임없이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계획을 꾸미고, 진행하고, 실행한다. 사단의 간계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일들이 우리의 일상이 되어 버렸다. 수많은 스캠이 우리 개개인을 타깃으로 해 범죄를 저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가족이 위험에 처해있다는 긴박함으로 우리를 몰고가 인간에게 가장 취약한 가족을 미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단은 어떠한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시키려는 사단의 전략중의 하나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의 유익 사이에서 타협하게 만드는데 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는 첫 번째 사건 역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말씀, 즉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신 그 말씀을 교묘히 속여 하와로 하여금 선악과를 먹게 만들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존재라면 사단이 전략을 세워 우리를 넘어뜨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앞서 언급한 대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 하나님이 자신의 생명까지 아끼지 않을 정도로 소중하게 여기는 존재들이기에 그만큼 가치있고, 동시에 그만큼의 사단의 공격도 심하고 또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간계한 사단의 계략에 넘어지지 않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완벽한 해결책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 6:13-17).”
우리가 옷을 입을 때, 무엇을 먼저 입어야 하는지에 대한 순서가 있듯이 전쟁에 나가는 군사들 역시 갑옷을 무장하는 순서가 있고, 동일하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을 때도 그 순서가 있다. 진리의 허리 띠, 의의 흉배, 평안의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경의 검. 이 중에서 무엇을 가장 먼저 입어야 할까?
가장 먼저 입어야 할 전신갑주는 바로 “진리의 허리띠”이다. 허리 띠는 로마 군사들이 칼을 몸에 단단히 고정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허리띠가 없이 칼을 찰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말씀의 검을 들어 사단을 대적하려 한다 할지라도 “진리의 허리띠” 위에 그것을 단단히 채우지 않는다면 우리의 무기인 말씀은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고, 그 진리를 허리의 벨트처럼 단단히 채워야 한다.
우리에게 있어서 진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아닐까? 진리는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바뀌지 않아야 하는 한 가지이다. 하늘 아래 변하지 않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오직 하나님, 홀로 계셔도 충분하시고, 스스로 존재하시는 그분만이 변치 않는 유일한 진리이며, 그 진리의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우리에게는 변함없는 사실이요 진리인 것이다.
우리가 이 진리의 허리띠를 단단히 차면 사단의 유혹에 넘어지지 않을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한 가지 예로 수치심을 살펴보자. 허리띠는 옷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하는 역할을 해주는데, 만약 우리에게 허리띠가 없다면 우리의 옷은 흘러내리고 이는 곳 우리의 하체를 드러내어 수치심을 불러일으킨다. 어떤 의미에서건 우리 인간의 연약함을 다루는 단어 중의 하나는 “수치심”이다. 아담과 하와 역시 선악과 사건 이후 자신의 벗은 몸을 부끄러워하여 하나님 앞에서 몸을 숨겼었다. 즉 우리가 사단의 덫에 걸려 넘어지는 순간 수치심이 우리에게 들어와 어떤 방식으로든 하나님으로부터 숨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만든다. 히브리어로 “덮개”는 곧 벨트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그들의 수치심을 덮기 위해 벨트가 필요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진리의 허리띠를 단단히 차고 있을 때, 우리는 사단의 계락에 넘어지지 않을 수 있는 분별력을 얻게 되고, 또 예기치 않게 찾아올 수 있는 어떤 상황에서건 우리의 수치심을 면할 수 있는 도움을 얻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비하신 영적 축복을 누리기 위해 영적갑옷을 단단히 입는 우리가 되길 원한다.
2021.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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