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대부분 믿는다. 하지만 대부분 그런 믿음이 있다고 해서 100%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렇다고 믿고 확신하고 고백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간혹 의심이 가는 성경의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휴거, 즉 이 땅에 다시 오실 예수님을 공중에서 만나는 이야기 일것이다. 이런 일이 분명히 일어날 것이라고 믿지만 내가 살아 있을 때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고, 미래의 어느 날, 우리 후손의 누군가는 경험할 일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마 16:28)”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창에 찔렀던 사람들 조차도 이 일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이미 2020년 전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말일까?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다른 말씀은 다 맞지만 예수님의 그 말씀은 살짝 틀린 걸까?
우리는 분명히 믿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참이고, 그 말씀은 분명히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그렇기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구름 속에서 주님을 뵈올 날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잃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그 일이 가능하다는 성경적 근거가 있다.
첫째, 스데반이 순교하던 장면을 기억해보자.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행 7:55-56)”. 그가 눈을 감기 직전 보았던 장면이 성경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 바로 그 순간,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 눈을 열어주실 것이고 구름 속에서 하늘이 열리고 우리를 맞이하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상상속의 그 장면은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하늘로 들림을 받는 그런 영화 속의 한 장면일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 일을 보겠지만 그것이 어떤 한 날, 한 시에, 어떤 한 장소에서 한꺼번에 휴거된다는 말은 아니다. 성경은 분명 그 날과 시는 하나님만 아신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일은 집학적 경험으로가 아니라 모든 사람 개개인에게 일어나는 개별적인 경험으로 일어날 일인 것이다. 마치 스데반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둘째, 엘리사와 그의 종에 관한 이야기이다. 엘리사의 거처를 둘러싼 아람 군사들로 인해 사환이 두려워 떨고 있을 때, 엘리사는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다”고 말했다(왕하 6:16). 그리고 그 사환의 영의 눈이 열리매 정말 허다한 하나님의 불말과 불병거가 엘리사를 둘러 지키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영적인 눈이 열리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세상을 보게 된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과 하나님의 나라의 시간은 다르다. 이 땅에서는 해가 뜨고 짐으로 하루를 계산하고, 태어나고 죽음으로 인해 한 생이 끝난다. 이 제한된 세상에서의 삶이 끝나고 눈을 감는 순간, 우리의 시간은 하나님 나라의 시간으로 옮겨지게 될 것이다. 그 나라는 낮과 밤도 없는 영원한 빛이신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고, 삶과 죽음의 싸이클이 없는 영원한 삶을 시간사는 곳이다. 인간의 사고의 개념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초월적 시간 너머로 우리는 이동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성경의 모든 말씀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 말씀이 참이라고 믿는다면 그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살면서 그 말씀을 경험할 수도 있고, 또 이해되지 않던 그 말씀이 나중에 이해되는 순간이 또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