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베푸신 식탁
인간의 마음에 탐욕이 가득 차면 이미 소유하고 있던 물질에 대한 감사보다는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불평과 원망이 싹트고, 처음에는 그저 단순하고 사소한 아쉬움으로 시작되지만 이 같은 생각은 점점 마음 가득 차오르게 되고 급기야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단계에 이르르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분명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물을 주시고, 고기를 먹이시고, 의복과 신발이 닳지 않도록 베푸신 기적을 충분히 맛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대적한다.
“하나님이 광야에서 능히 식탁을 준비하실 수 있겠는가?” (시78:19)
광야에서의 식탁! 그들은 이미 눈으로 보았고, 입으로 맛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또 잊어버렸다. 끝이 보이는 사막에서 목마르고, 배고플 때, 언제쯤, 어디에서 쉴 수 있을까 막막하기만 할 때, 사단은 우리 마음에 살포시 이런 생각을 심어 놓는다. ‘하나님은 이 광야에서 널 도와줄 수 없어. 어떻게 하나님께서 너를 위해 이 사막 한가운데서 식탁을 차려주실 수가 있겠니?’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의심으로 조금씩 바뀌어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끝이 보이지 않는 황량한 사막 한복판에 각종 맛 좋은 음식이 가득 차려진 식탁이 놓여 있을 때, 우리는 과연 어떤 기분이 들까? 아마도 입이 딱 벌어지고 두 손으로 입을 가릴 정도로 놀라며 두 분이 휘둥그레지지 않겠는가? 누가 내게 이런 식탁을…. 하면서 말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시다. 시편 23편은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신다”라고. 사단은 우리가 가진 것에 감사하기보다는 가지지 못한 것을 바라보고 불평하고 원망하게 만든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식탁이 바로 우리의 연약함과 좌절감 앞에 놓여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식탁은 우리의 원수가 보는 바로 그 앞에서 차려진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를 조롱하고, 넘어뜨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사단의 속삭임 속에서 오늘도 마음과 생각을 단단히 붙잡고 지켜나가련다.
(시편 78, 시편 23)
영광이 아닌 사랑
어느 날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너희가 단순히 영생을 얻기 위해 내게 오길 원치 않는단다”. 분명 우리가 알기로, 아니 우리가 믿기로는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에 가기 위해, 영생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믿는 것인데, 예수님은 이상한 말씀을 하신다. 우리가 단순히 영생을 얻기 위해 네게 오길 원치 않으신다고. 그럼 무엇 때문에, 왜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야 할까?라는 질문이 갑자기 생긴다.
그런데 예수님은 곧이어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않는다.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라고.
순간적으로 깨달았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정말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말이다. 우리는 자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역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는 것처럼, 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무엇인가를 포기하는 것처럼 말하곤 한다. 그리고 그런 말이 귀하고 거룩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주님께서 정말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하기를 원하신다. 모든 것의 동기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YES, 그러나 그것이 목적이 되진 말자!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YES,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기동하길 원한다.
(요한복음 5:40-42)
2025.1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