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번연(John Bunyan)의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를 보면 한 남자가 천국에 도달하기 위한 순례의 길을 묘사하고 있다. 목적지인 천국에 도착하기 위한 여정에서 그는 수많은 어려움과 유혹을 만나게 된다. 존 번연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길을 이같은 순례자의 여정으로 묘사하며, 우리로 하여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계속 걷도록 촉구하고 있다. 바울 역시도 그리스도인의 구원에 대한 같은 말을 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 구원이 단 한 순간의 이벤트가 아니라 파괴적인 도시에서 천국의 도시로 이동하는 영적 여정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리스도의 온전하심을 맛보기 위한 회심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회심은 예수님께 나아와 그분과 다시 연결되는 것이다.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나아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물어보던 장면을 기억하는가? 그는 존경받는 율법 교사였고, 돈도, 명예도, 권력도, 그리고 지위도 가진 남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다. 그는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영적으로 성장하고 싶은 깊은 갈망이 있었기에, 예수님이 그를 만났을 때 주님은 그가 하나님 나라와 진리에 대한 추구함이 있는 신실한 사람이었음을 아셨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영적 고갈을 경험할 때 여러가지 문제들이 생겨난다. 건강에 대한 염려, 미래에 대한 불안, 의심의 증폭 등 수없이 많다. 우리가 이런 문제들에 직면할 때 해야 할 일은 예수님께 나아와 그분과 “재연결”을 시도하는 것이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는(요 15)과 같은 이치이다.
예수님과의 분리는 온갖 종류의 두려움을 가져온다. 베드로와 제자들이 예수님 없이 배를 타고 가다가 큰 폭풍을 만났을 때를 생각해보게 된다. 그들은 폭풍 속에서 두려움에 떨었고, 가장 큰 두려움은 예수님이 자신들과 함께 계시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였다. 그리고 그들이 폭풍과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예수님이 그들 가운데 나타나셨고 폭풍을 잠잠케 하셨다.
영적인 의미에서 “배”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상징한다. 그리고 이 세상은 폭풍이 휘몰아치는 바다와 같다. 우리 삶에 예수님이 없다면 우리는 성난 파도와 비바람에 두려워할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이 우리 삶에 오셔서 우리와 동행하시면, 우리는 평안과 안전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예수님은 우리를 지금도 부르고 계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마 11:28)”. 만약 우리가 크리스챤이라면, 예수님과 더 친밀해져야 한다. 그분이 우리의 불안과 불확실성에 대한 걱정을 잠잠케 하실 것이다. 더불어 예수님은 육체적 혹은 정서적(감정적) 고통과 괴로움에서도 우리를 자유케 하실 것이다. 열 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기만 했을 때, 그녀의 혈루의 근원이 마르고 치유되는 사건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며, 그분이 우리의 모든 아픔과 고통을 치유케 하시는 분이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당신은 지금 하나님을 더욱 알고 싶은 영적 목마름이 있는가? 당신은 지금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두려워하고 있는가? 육체적 혹은 감정적 문제로 고통스러운가?
예수님의 음성을 되새겨보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마 11:28-29). 그리고 이렇게 한 번 실천해보자.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자.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자.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자리로 나아가자.
삶의 여정 속에서 한걸음씩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