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B-2. 영성지도의 전통
Ⅱ-B-2-a. 렉시오 디비나
렉시오 디비나는 라틴어 ‘lectio(독서)’와 ‘divina(신적인)’가 합쳐져 이루어진 용어로서 영적독서·성서독서·성독(聖讀)·말씀묵상기도·거룩한 독서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되어 사용되고 있다. 이 렉시오 디비나는 성경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마음 깊이 경험하며 그의 현존 안에 머물게 하는 영성훈련 방법으로 점진적인 네 단계-성서말씀을 읽고(Lectio) 이에 대한 묵상(Meditatio)으로부터 자발적으로 기도(Oratio)하며 하나님의 현존에 대한 경험(관상, Contemlato)에 도달함-를 통해 이루어진다. 물론 렉시오 디비나의 수행방법은 역사적으로 조금씩 다른 모습을 지녀 왔지만 일반적으로 귀고2세(Guigo Ⅱ)가 정리한 4단계-독서, 묵상, 기도, 관상-를 따라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첫째, ‘독서’의 단계에서는 독서의 주요 자료인 성서에 모든 관심을 집중하여 주의 깊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음으로써 눈으로는 본문을 보고 입으로는 소리 내어 읽으며 귀로는 듣고 마음으로는 그 뜻을 새긴다. 이는 인간의 다양한 기능을 사용하는 전인적인 독서였다. 이 렉시오 디비나는 ‘성서’라는 큰 숲이 아닌 성서를 구성하는 ‘각 권 혹은 각 구절’이라는 나무를 세밀하게 관찰하는 과정으로서 여러 장의 성서 분량을 읽기보다는 한 장 이내, 가능하면 짧은 본문을 3번 정도 반복해서 읊조리듯 읽는다.
둘째, ‘묵상’은 성경을 읽는 가운데 마음에 와닿아 선택한 구절을 계속 반복하며 암송하여 마음 안에 각인시키는 영혼과 육체의 전(全)인간이 행하는 단순한 방법이다. 어거스틴은 마태복음 4장 4절을 주석하면서 사람이 매일 빵을 먹듯이 낮 동안 뿐만 아니라 밤에도 복음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말씀을 듣거나 읽는 것은 음식을 먹는 것과 같고 말씀을 곰곰이 생각하는 것은 되새김과 같기 때문이다.
셋째, ‘기도’는 우리 자신의 노력 대신에 하나님께서 활동하시는 길을 준비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끊임없이 그분께 열고 성령의 처분에 우리 자신을 맡기는 적극적인 노력이다. 묵상의 처음 단계에서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지적인 추리와 사고가 점점 줄어들고 되새김을 통해 말씀을 묵상하면서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 오르는 그 분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하게 된다. 즉 여기서 기도의 역할은 제 힘으로는 도저히 하나님께 도달 할 수 없음을 알고 하나님의 초월적인 도움을 구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나안 여인의 고백(마 15:27)처럼 자신을 더욱 철저히 비워야만 한다.
넷째, ‘관상’ 단계는 인간의 어떤 활동이 작용하는 순간이 아닌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오시고 일하시는 것이 중심이 되는 순간이다. 융의 심리학에 따르면 자아의 의지를 넘어서 내면의 깊은 무의식을 만나는 것이라 표현될 수 있는 단계이다. 이것은 이성을 활용한 능동적인 나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인 상태에서 무의식과 만나지게 되는 것이다.
Ⅱ-B-2-b. 관상기도(묵상기도)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는 능력은 기독교 영성의 진수이며 기도는 영적이고 심리적인 건강의 중요한 요소이다. 관상기도는 이성적 사고보다는 사랑에 의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그 자체를 말한다. 즉 하나님께서 자기 내면 안으로 들어오도록 자유롭게 자신을 열어놓은 상태이며 마침내 하나님의 신비가 자기 자신의 내면에 부딪쳐 옴으로써 기도의 주체자와 객체자가 하나되는 일치경험의 상태이다. 그 상태는 지성적인 냉랭함이 아니고 가슴으로 느끼는 정감적인 경험이요, 분석적인 경험이 아니라 직관적인 경험이다. 그러므로 관상기도를 하는 중에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무엇을 비추어 주시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을 계속 바라보게 하시는지를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아빌라의 성 테레사(Teresa of Avila)는 『영혼의 성』에서 정원에 물을 대는 비유를 통해 기도를 설명한다. 우리가 죄를 씻고 묵상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멀리 떨어져 있는 샘에서 물을 길어 어깨에 메고 오는 것으로 비유한다. 그러나 기도생활이 성숙해감에 따라 고요의 기도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때 우리는 능동적인 노력보다는 마치 펌프를 통해 물이 저절로 흘러내려오는 것처럼 수동적인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는 단계에 이르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 마지막 단계는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에게 쏟아져 내리는 단계로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삶과 일치하게 된다는 것이다. 관상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몰두하다보면 기도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가 아니라 하나님 자체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관점으로 자연스럽게 전환된다.
관상기도를 했을 경우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있는 에너지를 방출하게 된다. 이 과정은 두 가지 다른 심리적 상태를 야기시킨다. 하나는 영적 위안(consolation)·영적은사(charismatic gifts)·심령능력(pyschic power) 등을 체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굴욕적 자기 인식을 통하여 인간의 연약함을 체험하는 것이다. 자기인식은 자신의 인격의 어두운 면을 의식하게 되는 전통적인 용어이다. 관상기도를 통한 무의식적 에너지가 안전하게 방출되기 위해서는 건강하고 거룩한 영적 습관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영적 위로나 체험에 치중한 신비주의자가 되거나 반대로 자신의 영적 피폐함을 깨달아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
선교사는 특별한 영성훈련단계를 거쳐 선교지로 파송된 준비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관상기도를 통한 무의식적 에너지의 경험에 비교적 안전하지만 그들에게 익숙한 봉사의 습관이나 무질서한 감정들로 인해 혼란을 경험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성지도자의 도움을 받아 분별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Ⅱ-B-2-c. 침묵훈련
토마스 머튼은 “복음의 말씀을 듣는 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감추어져 있다. 이 귀는 어떤 고독과 침묵에 잠기지 않으면 아무것도 들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의 영혼의 귀는 세상의 시끄러움과 마음의 조급함 그리고 혼란스러움으로 막혀있다. 좀 더 성숙한 영적 여정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내적 공간을 만들 필요가 있다. 이 공간을 만드는 훈련이 침묵이다. 이것은 단순히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고 삶의 무엇을 내면화시키는 기회이다. 동시에 고독이 필요하다. 이 고독은 세상에 등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얼굴을 돌리는 것이다. 또 성서에서는 “너희가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선교지에서의 특별한 고독을 경험하는 선교사에게 있어서 마음의 지성소에서의 깊은 침묵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얻고 회복하는 기회가 된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세미한 주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그는 다시 힘을 얻고 새로운 부르심을 따라 길을 떠났다(왕상 19:11-12). 급하고 강한 바람이 부는 가운데에도, 그 바람이 지난 후에 큰 지진이 있어도 그리고 지진이 지나가고 큰 불이 임해도 하나님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침묵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귀이고 하나님과 대화하는 입술이며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마음이다.” 침묵은 단순히 말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 가운데 자기의 내면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나아가 침묵을 통하여 인류의 전역사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소리를 감지하고 약한자들의 신음과 탄식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침묵은 “듣기”이다.
그 누구보다도 성서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는 선교사는 이 말씀이 가르쳐주는 메시지를 경청해야 한다. 하고 싶은 말과 해야 할 말을 잠깐의 침묵 이후로 미루어 먼저 들어야 할 음성 듣기를 속히 해야 한다.
-다음 연재: 영성지도의 현대적 치료
(본 연재는 본인의 논문을 정리한 것으로, 홈페이지의 기능적인 면에서 각주를 달 수 없기에 생략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