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B-3. 영성지도의 현대적 치료

Ⅱ-B-3-a. 영성지도와 심리치료의 통합의 필요성

현대 심리치료는 19세기 후반에 중세 신학의 독주와 서구 철학의 영역에서 독립되어 인간 탐구영역으로 발전되기 시작한 분야이다. 제반 심리치료 이론의 모체가 된 정신분석학은 정서장애와 정신질환의 임상치료와 더불어 사회전반에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이러한 관심은 정서적인 곤란이나 심리장애를 숙명적으로만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커다란 치료적 공헌을 하였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심리학 이론에서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온전한 치유, 성숙, 자기 초월에 대한 욕구)와 현대 심리치료 전문분야에서 금기시했던 영성의 본질에 대한 탐구 그리고 영성 이해에 대한 임상작업이 요구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갈등과 고통 속에 빠져있는 사람들의 심리적 요구에 대하여 구체적인 이해 없이 신학적 논의를 통해서만 그들을 돕는 것이 어려울 때가 많음을 느낀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종교적인 충고를 요청할 때 그것이 심리적인 문제를 위장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선교사와 사람들 사이에는 감정전이와 역전이들을 포함하여 많은 심리적인 문제들이 있다. 더욱이 선교사 자신이 심리적인 문제를 갖고 있는 경우에는 효율적인 상담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선교사가 심리학적 지식을 갖고 활동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럴 경우 선교사가 자신의 문제와 주변인들의 문제를 심리학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함으로 인해 보다 건강한 사역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심리학이 영성지도에 공헌한 요소들 가운데 하나는 종교적 삶에 존재하는 병리적인 특징들에 조명을 비춰주고 참 영성을 거짓영성이나 왜곡된 형태의 영성과 구별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한 개인의 온전한 성숙을 위해서는 영성지도와 정신치료가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할 필요가 있다. 

헌싱거(Deborah Van Deusen Hunsinger) 역시 한 사람이 2∼3개국 언어를 동시에 유창하게 말할 수 있듯이 “… 목회상담가들은 두 가지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들은 심리학의 언어와 상징체계만큼이나 신학의 언어와 상징체계도 충분히 연마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같은 말들이 설득력이 있는 것은 현대 심층심리학은 신앙의 언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적인 문제를 탐구해 나갈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개발하고 현대인들은 신앙언어보다 새로운 상징 언어로 그들의 문제를 분석해야 더 잘 이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성지도자들 역시 어떤 내담자들에게는 그들의 문제가 신학언어와 심리학 언어를 통하여 서로 혼동되지 않고 각각의 언어로 해석되고 치료되어 정신적 발달과 영적 발달을 동시에 이룰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영혼의 돌봄은 오랫동안 정신건강 전문가들에게 지배당해왔다. 그 결과 교회는 자기 내면을 돌보고 치유하는 일에서 우위를 상실해 버렸다. 최근 영성지도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해준다. 또한 영성지도는 목회상담과 심리치료가 둘 다 인간 경험의 영적 차원에 적절히 참여할 수 있는 고유한 방법을 찾아내도록 도와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모두가 인간의 내면세계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고 있으며 이것은 인위적으로 심리적 부분과 영성적 부분으로 분리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심리학과 영성지도의 통합은 분리될 수 없는 인간의 내면세계의 질서를 바로잡아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적인 자기회복을 위한 관문이다.

Ⅱ-B-3-b. 역동심리치료와 영성지도

현대에 들어오면서 영성지도 분야에서도 심리학과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영성지도자들은 심층심리학의 통찰에 관심을 가질 뿐 아니라 이를 배우고 체득하는데 투신하기 시작하였고 영적·내면적 삶을 개척해 나가는 데 있어서 사회적·심리적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준비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인간을 몸과 영으로 따로 나눌 수 없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것과 심리적이 것을 구분하는 것 또한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심리학은 인간의 일생을 인생의 주기로 구분하여 그에 따른 발달 과정과 과제에 대한 이해를 갖게 했다. 더불어 인간을 신체·정신·정서·영적인 영역에서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구조적인 틀과 방법도 제시해주었다. 결과적으로 정신·건강적 측면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심리치료적인 배려로 돌봄을 받게 되면서 전보다 더 진전된 형태의 영적 성숙을 위한 지도와 영적 욕구를 표현하게 되었다. 이런 필요들을 통해 영적으로 온전한 인간관과 더불어 심리학적·과학적 인간이해를 갖고 삶과 영성의 구체적인 문제를 통합적으로 응답할 준비를 하고 연구하면서 영적 여정을 함께 할 잘 훈련되고 교육되어진 영성지도자를 요구하는 시대 가운데 와 있다.

청년기 이후에 선교사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과 달리 어린 시절부터 선교사로 살겠노라 서원하고 준비한 사람의 경우 자기희생과 헌신에 대한 내·외적인 환경이 강하게 조성된다. 그리고 심리적으로 억압된 상태에 놓여진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돌보기 이전에 이미 “주어진 정체성”이 있는 상태이고 그 틀 안에서 자신을 구성하고 준비하기 때문에 속사람을 돌본다는 것은 사치라고 여겨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기 때문에 내면에 어떤 역동적 심리가 오고가든지 겪고 있는 갈등의 근원적인 해결을 오직 “죄”와의 싸움으로 혹은 “영적 침체”로만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본 논문에서 계속적으로 논하는 것처럼 영성과 심리학의 통합적 관점에서 인간을 바라봐야만 궁극적인 전인적 치유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심리치료와 영성지도는 더 이상 각기의 고유 영역에 머물러 있지 않고 보완적 동반자로서 그 교육(수련)과 임상(지도)에서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다. 특히 일각에서는 온전한 기독교적 인간치유와 성숙의 공통목표를 위하여 실제 방법론적으로 통합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살펴본다면 역동심리치료와 영성지도를 통합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자기표현적 글쓰기 치료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 통합적 방법론일 뿐만 아니라 선교사 돌봄을 위한 연구의 마중물(priming water)이기도 하다.  

융은 자아(ego)가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을 개성화 과정으로 이해하면서 이 개성화 과정에서 사람들은 일생을 통하여 자기와 자아의 분리와 결합을 경험하게 되며 이를 통하여 심리적인 발달을 하게 된다. 이때 자아는 모든 정신 요소가 의인화되어 나타날 수 있는 무대이다. 자기란 의식적인 자아 위에 자리잡은 어떤 전체성이다. 자기는 의식은 물론 무의식적인 정신까지 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보다 광범위한 인격을 말해주고 있다. 곧 자기는 전인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의 이미지와도 관계가 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인간은 태생부터 불안을 느끼고 유전자적으로 이기적인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다. 이 말은 사람들이 자기중심적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인간은 태생 이전에 이미 사회 양식의 구조 속에 있고 생의 발달과정에서 부모나 주된 양육자부터 돌봄과 양육을 제공받아야 그 사회 속에서 자아가 발달된다. 하지만 선교사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양육자로부터 항상 만족감을 얻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때로는 적절한 좌절경험을 통하여 불완전함과 불만족도 배우게 된다. 인간의 심리적 발달이란 긍정적인 발달과 부정적인 발달 모두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자기(self)가 성숙해짐을 의미한다. 선교사들에게 자기희생, 헌신, 봉사와 같은 단어들은 그들의 부르심과 직결되는 단어로 규정되어지는 선교사가 역동심리치료적 측면에서 전인적인 심리발달을 이루었는지에 대한 자기점검이 있어야 한다.

-다음 연재: 선교사와 영성지도

(본 연재는 본인의 논문을 정리한 것으로, 홈페이지의 기능적인 면에서 각주를 달 수 없기에 생략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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