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C. 선교사와 영성지도

선교사들이 중도 탈락하는 가장 큰 요인은 영성의 힘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선교현장은 매우 치열한 영적싸움의 현장이며 광야와도 같은 곳이다. 게다가 사역을 위해 급히 달리면 감사는 커녕 기도조차 피곤한 행위가 되어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지 못한다. 그리고 선교지에서 그들은 영적으로 건강하다거나 영성이 깊어졌다는 고백보다는 오히려 힘들고 어렵다는 고백을 더 많이 한다. 이 말 속에서는 영적으로, 정서적으로, 육체적으로 고된 삶을 살고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사역의 현장에서 부딪치는 파송교회와의 갈등, 현지인과의 사역으로 인한 고충, 선교사 가족 간의 문제, 선교사로서의 정체감 혼미 등 총체적 이슈를 포괄하는 그들의 문제는 근원적으로 성서적 토대 위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 

타문화권 복음 전도라는 독특한 목적을 위해 하나님께 부름을 받는 선교사의 영성은 하나님께 보냄을 받아 사람들을 그분께 이끌어 가는 노정(路程)과 관련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면전에 서는 것이요 동시에 그분의 대사로서 사람들 앞에 나아가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보내신 자의 의도 속에 있는 천국을 선포하는 것이요 그 천국을 이 땅에 건설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교사에게 있어서 영성이란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구현해내는 사명의 총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영성지도는 선교사에게 그들의 존재에 대한 성서적 기초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전인적 회복의 타당성을 부여해준다. 선교사의 영성을 돌보는 영성지도는 공식적이면서 동시에 비공식적인 관계로 이루어지게 된다. 본 장에서는 공식적이면서도 비공식적인 관계일 수밖에 없는 선교사를 영성지도로 돌봐야 하는 근거를 제시하고 선교사가 자기표현적 글쓰기를 통하여 자기경험을 서사적으로 기록하여 자기를 발견하는 과정을 고찰하게 될 것이다.

Ⅱ-C-1. 선교사 돌봄으로서의 영성지도

인간이 공동체를 이루어 살던 혈연·지연 중심의 집단적 문화를 벗어나 문명의 발달로 말미암은 무한경쟁사회의 돌입은 우리로 하여금 관계 안에서 경쟁하게 하고 깊은 패배감과 좌절을 맛보게 한다. 가족의 해체와 범죄의 범람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아픔과 고통의 한계의 절정에 다다르게 함으로써 각종 사회·심적 문제를 야기시켰다. 동시에 미래에 대한 기대도, 확신도, 희망도 없게 만들었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또 나는 건강한가’는 중요한 삶의 이슈가 되었다. 이 같은 정체성·사명의 재확인·내면상처에 대한 치료와 회복에 대한 질문들이 일반인을 비롯한 선교사의 화두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담을 필요로 하게 된다.

선교사의 사역을 보다 질적으로 향상시키고 또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선교사를 위한 돌봄 서비스에 대한 평가를 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선교사 멤버케어의 목적은 선교사들이 영적·육체적·정신적·심리적·관계적 차원에서 건강하고 발전적인 상태를 유지하며 선교현장에서 삶과 사역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게 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선교사에 대한 ‘돌봄의 부족’에 관한 인식이 현재 ‘멤버케어’ 혹은 ‘선교사 케어’라고 부르는 운동을 불러일으켰다.

예수는 고난과 위험 그리고 죽음의 위기 속에서 사셨을지라도 자신의 힘을 잘 관리하셨다고 포일(Marjory F. Foyle)은 말한다.

 예수님은 베다니의 집을 마치 전기 소켓처럼 가서 쉬고 전력을 재충전받는 곳으로 사용하신 것 같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자주 꽃, 물고기, 새를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기도하기 위해 산에서 시간을 보내셨을 뿐 아니라 자신을 보러 걸으셨다는 것을 뜻한다. … 예수님도 우리처럼 피곤하셨을 것이다.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곁에 그대로 앉으시니(요 4:6)”. 예수님이 결코 탈진하지 않으신 이유 중의 하나는 아주 현명하셔서 잘 앉으셨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산상수훈은 아주 긴 설교였는데 예수님은 말씀을 시작하실 때 언덕에 편히 앉으셨다.

쉬어가야 할 때를 적절히 아셨던 예수의 지혜를 따라 선교사 역시 그와 같이 자신의 힘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또 그 힘을 길러야만 한다. 이를 위한 방법으로서 영성지도와 자기표현적 글쓰기 치료의 통합은 사역에 있어서 “현명하게 잘 앉는” 순간이 될 것이다.

-다음 연재: 원거리 선교사 돌봄

(본 연재는 본인의 논문을 정리한 것으로, 홈페이지의 기능적인 면에서 각주를 달 수 없기에 생략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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