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자기표현적 글쓰기 치료에 관한 이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자아를 규명하고 자기 존재에 대한 성찰이나 경험을 드러내는 문학의 한 장르가 자전적 글쓰기(autobiographical writing)이고 자기표현적 글쓰기도 ‘나’라는 존재를 표현하는 글쓰기이기에 자전적 글쓰기의 그 의미를 같이한다. 

또한 자기표현적 글쓰기는 글을 쓰는 주체가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과 소통하고 탐색하는 것, 어떤 대상에 대한 자신만의 의견을 떠올리는 것, 혹은 세상에 대한 자기만의 반응을 표출하는 것 등을 글로 쓸 때 나타나는 유형(mode)이라고 할 수 있다.

성인이 된 한 사람이 보여주는 인생은 일생을 통해 형성된 자기 생각과 경험들이다. 비록 이 생각과 경험들이 성인의 형태를 취하고 있고 또 어린 시절과 관련된 사건에 의해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결국 그의 현재는 어린 시절의 인간관계나 자아발달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러나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기 때문에 지금 해결하지 않은 문제는 반복적으로 내일 또 발생한다. 

자기를 안다는 것은 자기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갖춰져 있음을 의미한다. 자기에 대해 질문하고 탐색하며 이해함으로써 타자를 이해하는 폭이 깊어진다. 이 같은 자기발견의 과정은 철학적이다. 동시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민해야 하는 보편적인 고민이기에 인문학적이다. 

본 장에서는 자기표현적 글쓰기를 철학적·인문학적·성서적으로 접근하여 설명하려 한다. 그리고 자기표현적 글쓰기 치료의 심리학적 배경을 정신분석과 분석심리학 그리고 게슈탈트 심리학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이 글쓰기 치료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선교사가 자신의 방어기제와 저항을 이해하고 발견하는 것이므로 이에 관한 세부적인 내용도 다루고자 한다.

A. 자기표현적 글쓰기 치료의 역사

1. 인문학적· 철학적 접근

a. 인문학적·철학적 접근

글쓰기 치료는 언어나 말을 사용하는 문학치료 전반을 통칭하는 것으로 그 역사는 인간이 글을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면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문자를 발명한 이래 글쓰기는 마음을 치유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스스로의 감정을 일정한 거리를 갖도록 분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수 세기동안 수많은 위기를 거쳐 온 인간이 크고 작은 변화 속에서도 나름의 안정감과 질서를 유지하도록 도와주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치료를 위한 글쓰기’일 수 있다.

고대인들의 동굴벽화나 돌 그리고 파피루스 등에 기록된 글이나 문자는 개인과 전체 사회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며 고대인들의 감정·사고·행동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A.D. 400년경에 쓰여진 어거스틴의 『고백록』을 보면 글이 치료적 매개체일 뿐만 아니라 자기점검의 도구인 것도 알 수 있다. 그는 현대의 분석심리학과 정신과학적 자기분석 및 이해의 틀을 갖춘 장편의 저널형식으로 자신의 청년기 방황의 세월을 회고적으로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10세기경 동양의 궁정 여인들의 ‘베갯머리 수첩(pillow book)’과 19세기경의 서양의 신사숙녀용 ‘가죽저널’ 역시 그러하다. 자기표현적 글쓰기가 심리학이 체계화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심리치료의 한 분과가 아니라 자기 정체성의 발견과 이해를 위한 성찰의 과정으로서 이미 존재해왔던 고전적 방법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을 거쳐 이것이 심리치료로서의 글쓰기로 발전되어 그 효과가 입증되는 많은 실험적 결과들이 나오게 되었다. 

심리치료에서 글쓰기 사용의 가장 큰 이점은 감정을 분석하고 표현하기 위한 매개물을 제공하는 데 있다. 글쓰기는 강한 감정을 풀어놓음으로써 정화적인 효과를 제공하고 내적 갈등·불안·혼란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특별히 독자가 있는 글쓰기가 아니라 자기고백적인 글쓰기일 경우 자기를 표현한 그 글 속에서 또 다른 자기를 발견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자기표현적 글쓰기의 가장 대표적인 종류가 “일기(日記)”라는 점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일기쓰기는 의도된 독자를 기본적으로 설정하지 않는데다가 필자 자신이 경험한 사실에 대한 기술, 사건과 관련한 자신의 감정, 기억에 대한 기술을 중심으로 한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에르노(Annie Ernaux)는 자신의 작품들을 글쓰기 방식을 “허구”, “자서전적 글쓰기”, “내면일기”로 분류하면서 “내면일기”에 대해 말하였다. 내면일기는 특별한 지향점을 두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털어놓는 글쓰기이다. 타인을 위해 수정할 필요도 없고 형식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오직 자기 자신의 은밀한 생각이나 감정을 정교하게 기록함으로써 자기를 얽매이게 만드는 “만들어진 자기”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중세시대에는 어거스틴의 고백록과 같은 자서전 문학이 종교적 회심이나 자기고백이라는 특징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것이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세속적인 자아의 내면 탐구와 자기 성찰의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18세기 낭만주의와 근대적인 개인주의가 등장한 후 자신과 타자의 차이를 인식하고 자아나 개인적인 삶을 이야기의 대상으로 생각하게 되면서 자서전 문학이 발전하게 된 것이다. 자서전 문학은 본 연구자가 논하고자 하는 자기표현적 글쓰기와 그 의미가 같을 수 있으나 글을 읽는 대상의 유무에 따라 자기반성과 성찰의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서전으로 대표되는 자기표현적 글은 현재의 자아가 ‘과거의 사건’와 ‘과거의 자아’를 지금의 시각에서 해석하고 재구성하면서 자아를 이해하고 인식하는 방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표현적 글은 자아가 외부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인식되기 때문에 현실세계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표현적 글쓰기로서의 자서전이 인간의 내면을 성찰하여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연결하는 치료제 역할이 가능하다.

-다음 연재: 인문학적 접근으로서의 자기 성찰

(본 연재는 본인의 논문을 정리한 것으로, 홈페이지의 기능적인 면에서 각주를 달 수 없기에 생략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One Comment

  1. 영성일기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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