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 대해 비판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비판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리스도인들은 다양한 신이나 종교에 대한 포용력이 없고 편협하다는데 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요 14:6)”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가르침 그대로,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임을 믿고 살아간다.
그렇지만 이 땅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교들은 유일한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신을 찾고, 믿고, 따른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힌두교인들의 인사인 “나마스떼”의 의미가 바로 이같은 범신론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말이다. 이 인사는 “내 안에 있는 신이 당신안에 있는 신을 존중하며 인사합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내가 믿는 신과 당신이 믿는 신이 다르기에 그 존재를 인정한다는 말이다. 이런 인사말만 보아도 힌두교에 비해 기독교는 타종교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예수님만이 한 분 하나님께 나가는 유일한 길이란 사실은 우리가 만들어 낸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그렇게 정하신 일이다.
이렇게 한 번 생각을 해보고 싶다. 만약 우리가 아마존 정글에 2주 동안 휴가를 갈 기회가 생겼다고 하자. 아마존 정글은 우리가 전혀 모르는 미지의 땅이기에, 그 땅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가이드가 필요하다. 적당한 가이드를 찾기 위해 사람을 찾다보디 딱 두 사람이 눈에 띄었다.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아마존 정글에서 오랫동안 지내다 보니 당신이 원하는 지점까지 가는 수백개의 길을 알고 있습니다. 그치만 길이 너무 많다보니 어떤 길이 당신에게 좋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또 다른 가이드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그동안의 아마존 투어 경험을 통해서 당신이 말한 그곳에 가는 가장 정확하고, 안전하고, 빠른 길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가이드에게 더 믿음이 가는가? 너무 많은 길이 있어서 가장 좋은 길이 어딘지 잘 모르는 가이드와, 많은 길을 알고 있지만 그 중에 베스트를 알고 있는 가이드.
어떤 미지의 여행을 할 때도 가이드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할 것인데, 하물며 우리의 인생이 달린 일에 있어서 어떤 가이드를 따를 것인가 어떠하겠는가. 우리는 바른 길, 옳은 길, 정확하고 안전하고 절대적인 한 길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즉, 이전에도 변하지 않았고, 또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절대적인 진리의 길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믿을 것인가를 선택하고, 또 바꾸기도 한다. 일본이 그런 다신교의 대표적인 나라인데, 일본에서 우세한 종교는 “신또”인데, 이 신또에서는 모든 것이 다 신이 될 수 있다. 심지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위패를 모시고 신처럼 신봉하는 일본인들도 있다. 이들에게는 무엇이든 신이 될 수 있고, 또 하나의 신만 영원히 섬기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신으로 선택하고 바꿀 수도 있다. 그들이 믿던 신이 자신이 원하는 축복을 주지 않을 경우, 그들은 또 다른 신을 찾는다.
그렇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요 15:16)고. 그분의 부르심은 저항할 수 없는 초대이자 변개하심이 없는 권위를 가진 계시의 말씀이다. 믿음을 흔들리게 만드는 수많은 유혹 속에서 어떻게 반응하는가는 우리의 몫이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우리의 믿음이 도전받을 때 자신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
다신교나 범신론을 믿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무신론자들도 있다. 그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믿으며 진화론을 믿는다. 이들은 자연선택 과정에 의존되어, 분화, 적응, 변이에 의해 하나의 세포가 유전학적 재구성을 거쳐 지금의 인간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 이론을 단순화시키면 인간은 그저 우연히 만들어진 존재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반면에 인간의 지성을 사용한다면 충분히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중 한 사람인 윌리엄 팔리(William Paley)는 하나님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 이런 이론을 만들어 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식물은 복잡한 구조를 가진 개체로서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어떤 똑똑한 디자이너가 그것을 만들지 않고서는 그렇게 정교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의 이론의 근거가 될 만한 비유는 이러하다. 만약 우리가 어느 날 숲속을 걷고 있는데, 우연히 바닥에 떨어져 있는 시계를 발견했다고 가정하자. 그 시계는 과연 자연적으로 만들어져서 그곳에 존재하는 것인가? 마치 나무에 열린 사과처럼? 아니면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것을 누군가가 잃어버려서 거기 떨어져 있는 것인가?
대답은 후자일 것이다. 자연적으로 그런 정교한 시계가 만들어질 수 없다. 하물며 인간은 어떠한가? 이 시계보다 더 정교한 존재가 아닌가?
우리는 무엇을 믿을 것인가? 지금처럼 기독교의 존재가 비난받고, 혼돈 속에 갈바를 모를 때,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며 무엇을 바라봐야 하는가.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주님을 바라보자!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길이요, 유일한 선택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