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A-2. 성서적 접근

유종호에 의하면 “시에 대한 이해는 언어에 대한 이해이며 언어의 이해는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에 대한 이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니콜라스 마자(Nicholas Mazza)는 시적 언어는 수천 년 동안 지구상의 모든 문화에서 인간의 상실감·실망감·이루어지지 않은 꿈을 담아주고 대변하는 그릇 역할을 해왔다고 했다. 시적 언어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오롯이 담아내는 도구이자 자기의 내면 심층에 감추어져있던 무의식을 의식화시키는 통로이다. 즉 시의 언어는 자기를 점검하고 표현할 수 있는 도구인 것이다. 

파스칼(Blaise Pascal)에 의하면 시는 특히 응축된 감정표현이 고양된 말로써 인간의 전체성에 대한 인식을 전달하는 감정표현의 한 양식이라고 했다. 이를 반증이라도 해주듯 정신치료나 심리치료에서 치료의 도구로서 ‘시’를 활용하고 있다. 특히 선교사를 치료의 대상으로 할 경우 일반적인 시를 활용한 치료도 충분히 효과를 거둘 수 있겠지만 그들만이 누릴 수 있는 독특하고 특별한 시 세계인 ‘시편’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자기표현적 글쓰기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온전한 치유와 회복에 적합한 도구가 될 만한 많은 장점들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 전인적 치유의 대상에는 선교사를 포함한다. 선교사가 자기의 이야기를 글로 표현했을 때 글을 쓰는 과정 동안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자아를 발견하게 되고 자신의 문제를 직시할 수 있는 객관적 거리감을 갖게 되며 그로 인해 주체적으로 자기문제를 해결할 힘을 얻게 된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14장 17절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다. 이런 하나님의 나라가 인간의 마음속에 지속적으로 임하고 확장되기 위해서는 현상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인간의 마음이 중요하다. 마태복음 13장 19절에서 23절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려진 자요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 나무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인간이 자기의 마음의 터전을 잘 돌보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요 온전한 회복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성서는 인간 내면의 치료 목적을 위해 쓰여진 심리학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다루는 구절이 919회나 언급되고 ‘치료’라는 단어를 66회 이상 언급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자신의 백성의 부르짖음과 고통에 온전히 응답하여 우리들의 필요와 간구를 들어주시고 죄와 억압의 사슬에서 벗어나 자유와 해방감을 주시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인간의 고통과 상처를 싸매시고 돌보시며 그들의 상한 심령을 치료하고자 하시는 그분의 깊은 관심과 섬세한 돌보심을 반영한 것이다. 심리학이 인간의 마음을 탐구하는 학문이라면 그 기원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으며 자기표현적 글쓰기를 성서적으로 접근한다는 것 역시 성서가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고 다루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구약의 시편과 전도서에는 하나님을 향한 저자의 절규와 애환과 고통의 고백이 담겨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돌보심에 대한 간구, 그에 대해 신실하신 응답하심으로 그들의 상한 심령이 회복되는 것에 대한 기쁨 그리고 새로운 삶에 대한 비전 제시가 잘 나타나 있다. 시편은 현재의 감정과 정서를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장르로서 ‘지금-여기’의 나를 충분히 보여줄 수 있다. 이 시편은 시적 공간을 통해 다양한 삶의 궤적과 편린들 즉 다양한 심리적·정서적 경험들을 자유롭게 표현해 내며 시편 기자의 진실한 내면의 고백은 독자들에게 과거의 상처를 유쾌하게 끌어안을 수 있게 하고 현재를 견디게 하며 미래를 명료하게 꿈꿀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마찬가지로 신약에서도 자기표현적 글쓰기를 통해 자기 고백을 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이는 대부분이 사도 바울의 자기반성적 서신서들이다.  

시는 인간의 언어를 상징화하거나 형성하고 연상하는 기능을 활성화시켜서 더 풍성하고 더 깊은 의미-내용과 결합함으로 시 외에는 불가능한 마음의 형상을 만든다. 상징과 비유 그리고 마음의 형상은 사실이나 계획을 함축해서 과거의 기억이나 가치 있는 감정과 독특한 통찰을 창조하고 더 깊은 진리를  조성한다. 이러한 경험이 영혼치유에 도움이 되는 수단이 되고 성서는 이러한 문학적 장치로 가득하다. 시편은 이 같은 인간의 내면의 아픔과 고뇌를 가감 없이 솔직히 기록함으로써 단순히 고통을 토로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기를 치유하는 근원적인 힘인 창조주와의 내적인 대화를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시편 저자는 자기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 그는 지금 무엇인가로 인해 낙심한 상태이고 내면에서는 불안이 엄습해오고 있다.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

그는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기에 자기 영혼의 상태를 이미 아시는 분이심을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시편의 저자 자신을 더 깊은 자기이해와 인식으로 이끌어줄 수 있는 분이라는 신뢰를 담고 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소서

이 고백에서 하나님은 인간이 자기이해를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멀리계신 분이 아니라 가까이에서 그 길을 걷고 있는 분이라고 이해하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시편 저자는 자기가 직면하고 감내해야 할 모든 문제들로 인해 억압된 현실에서 해방되기를 소망하는 글을 써내려가는 과정에서 저자의 고통이 점차 완화되어 가는 것을 보게 된다. 또한 각 글의 후반부에서 자신의 버림받음이 버림받음 그 자체만이 아니요 자신의 고통 역시 무관심하게 버려진 고통이 아니요 하나님이 돌보시고 구원해주실 확신으로 대치되고 있음이 나타난다. 그리하여 저자의 절규는 하나님에 대한 기대와 신뢰의 회복, 그의 돌보심에 대한 의지와 믿음으로 바뀌고 상한 감정과 문제로부터의 해방감과 안도감, 안정감과 소망을 얻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시편은 자기표현적 글쓰기 치료의 효과를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시편 22편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선교사의 내면고백과 하나님의 위로와 돌보심을 대표할 수 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어찌하여 그리 멀리 계셔서 살려 달라고 울부짖는 나의 간구를 듣지 아니하십니까? 나의 하나님, 온종일 불러도 대답하지 않으시고 밤새도록 부르짖어도 모르는 체하십니까. … 나를 보는 사람은 누구나 나를 빗대어서 조롱하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면서 얄밉게 빈정댑니다. ‘그가 주님께 그토록 의지하였다면 주님이 그를 구하여 주시겠지. 그의 주님이 그토록 그를 사랑하신다니 주님이 그럴 건져주시겠지’ 합니다. … 나를 멀리하지 말아주십시오. 재난이 가까이 닥쳐왔으나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바산의 힘센 소들이 이 몸을 에워쌌습니다. 으르렁대며 찢어발기는 사자처럼 입을 벌리고 나에게 달려듭니다. 나는 쏟아진 물처럼 기운이 빠져 버렸고 뼈마디가 모두 어그러졌습니다. 나의 마음이 촛물처럼 녹아내려 절망에 빠졌습니다. 나의 입은 옹기처럼 말라 버렸고 나의 혀는 입천장에 붙어 있으니 주님께서 나를 완전히 매장되도록 내버려 두셨기 때문입니다. 개들이 나를 둘러싸고 악한 일을 저지르는 무리가 나를 에워싸고 내 손과 발을 묶었습니다. ….”

버나드 앤더슨(Burnard W. Anderson)은 시편에는 “진흙과 수렁에 빠진 사람도 들어 올릴 수 있는 구원과 신뢰와 확신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한다. 특히 위의 시편에서는 저자의 감정이 솔직하게 표현되고 있으므로 연구자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자기표현적 글쓰기를 대표적으로 성서적 근거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표현할 때 과장된 표현을 하거나 억지스러운 감사와 미사여구(美辭麗句)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자기의 솔직한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때 비로소 치료와 회복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계속적으로 언급하지만 시편은 인간에게 주어진 성경전승 중에 가장 믿을 만한 신학적·목회적·종교의식적(제의적) 자료를 제공해준다. 즐겁거나 고통스러운 시절들이 시작되고 끝날 때, 세대가 가고 또 다음 세대가 올 때, 선교사들은 그들의 문젯거리들을 가지고 나와 하나님과 대화하곤 한다. 시편은 이런 대화를 도와주는 좋은 자료이다. 시편의 저자가 그러했듯이 선교사 역시도 자기를 표현하는 글쓰기를 통해 자기발견의 통로를 스스로 열 수 있게 되고 동시에 하나님과 사귐의 깊이도 깊어진다.

글쓰기 치료에 대한 교회사적 적용은 그레고리우스(Gregory Nazianzus), 암브로시우스(Ambrosius Aurelianus), 크리소스톰(John Crysostom),  제롬(Eusebius Sophronius Hieronymus, St. Jerome), 바실리우스(Lucius Minucius Basilus) 등 초대교부들의 위로하는 편지나 문건들에서 잘 나타난다. 

그레고리우스의 자서전적 시는 삶을 운문적 형태로 표현한 서구 최초의 시적 자서전이라고 한다. 그는 가계를 걱정하고 형제의 죽음으로 비탄에 빠졌으며 금욕적인 생활로 번민했다. 그의 자서전적 시는 저자가 상실한 것들에 대한 슬픔으로 가득 찬 일종의 애가(哀歌) 형식을 띤다.

교부들의 회람서신은 구약성서의 시편이나 말씀의 선포를 통한 위로 사역의 연장으로 이해되며 초대교회 영혼의 돌봄 전통에서 가장 특이할 만한 것이다. 선교현장에서 사람과 사역으로 인해 지친 선교사들을 위한 심리학적 도움은 이미 성서에서 제시해주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자기표현적 글쓰기 치료는 선교사가 쉽게 노출시키지 못하는 내면의 고백을 글로 표현하는 영혼돌봄의 또 다른 차원이며 이는 궁극적으로 선교사역을 지속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자기표현적 글쓰기를 성서적으로 접근해서 살펴본 결과 시편과 같은 자기표현적 글쓰기는 선교사가 “홍해의 깊은 곳”에서도 희망을 놓치지 않고 현재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여 건강해지도록 돕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시에 선교사가 자기를 솔직하게 표현했을 때 그것이 궁극적인 치료와 회복의 고백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살펴보면서 자기표현적 글쓰기가 건강한 선교사가 되기를 촉구하는 촉진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 연재: 자기표현적 글쓰기 치료의 심리학적 배경

(본 연재는 본인의 논문을 정리한 것으로, 홈페이지의 기능적인 면에서 각주를 달 수 없기에 생략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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