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B. 자기표현적 글쓰기 치료의 심리학적 배경

인간은 아무리 겉으로 건강하고 부족함이 없이 보일지라도 실제로는 양극, 즉 불안-안정·유한성-무한성·삶-죽음·사랑-증오·건강-질병 등의 긴장 속에서 불확실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다. 최재락은 “만약 우리의 모순과 갈등이 잘 조정되지 않고 심화되면 자아가 분열되거나 억압되어서 병리적이거나 신경증적인 증상을 보이기 쉽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같은 심리적 문제를 영적인 문제로 해석하여 적절한 심리적 해결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더 심각한 병리적 문제를 양산시킬 수 있다. ‘자기주도적 케어’의 주체이자 대상인 ‘자기’를 글로 표현한다고 가정했을 때 ‘무슨 내용을 쓰는가’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자기표현적 글쓰기에서 기본적으로 다루게 될 내용은 선교사 자신이 경험한 하나의 사건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것은 보편적으로 자유연상에 의한 글쓰기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본 연구에서 다루고자 하는 자기표현적 글쓰기의 내용은 자기가 경험한 사건에서 드러난 인간의 심리를 심리학적 용어로 표현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자기표현적 글쓰기가 가진 심리학적 배경이 무엇인지를 먼저 고찰해보고자 한다.

자기표현적 글쓰기 치료를 대변해주는 심리학적 배경은 어느 한 가지의 이론으로 규격화시킬 수 없다. 인간의 전 생애가 다루어지는 만큼 어느 하나의 특정 이론으로 이해하고 해석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이론들의 통합으로 귀결된다. 본 연구에서는 심리학의 역사적 흐름에 비추어 상호 관련이 있는 심리학 이론을 중심으로 다루어보고자 한다. 우선 현대 심리학의 초석을 닦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그의 뒤를 이은 칼 융의 분석심리학의 기본 개념을 통해 자기표현적 글쓰기 치료에서 다루게 되는 인간 심리의 기본 구조를 살펴볼 것이다. 이어서 게슈탈트 심리학의 주요개념과 강조점이 치료받는 대상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더불어 자기표현적 글쓰기 치료에서 표현되는 방어기제와 저항의 원리를 다룸으로써 자기표현적 글쓰기 안에 표현된 자기를 심리학적으로 이해하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한다.

 

Ⅲ-B-1. 정신분석학과 분석심리학

Ⅲ-B-1-a. 정신분석학에 대한 이해

정신분석이란 프로이트에 의해 탄생한 인간이해에 관한 심리치료이론이다. 이 학문은 인간의 무의식을 밝혀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나는 인간의 다양한 문제의 원인이 마음에 있을 수 있음을 표명해주었다. 또한 의학적 접근과 심리치료적 접근을 병행하여 심리장애가 단순히 현재의 문제가 아닌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온 내상과 외상을 연결하는 단초가 된다고 말하였다. 이 과정을 통해 인간에 대한 좀 더 역동적 파악이 가능해졌고 수많은 심리치료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선교사의 역동적인 삶에 내포된 인간의 무의식은 살펴보고자 한다. 선교사는 종교 지도자이기 때문에 사회는 선교사에 대한 무의식적 기대심리가 있다. 사회·심리학적으로 혹은 사회·문화적으로 접근하여 그들을 이해하려 하기 보다는 이유 없이 막연한 종교적 이해가 있다. 그래서 사회는 좀처럼 그들의 역동적 삶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아니, 교회조차도 들으려하지 않고 듣기를 부담스러워한다. 하지만 선교사 돌봄의 필요성이 절박한 지금의 때에 선교사 자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심리학적 설명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선교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어떤 언어로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그 존재가 규명되어지기 때문이다. 

선교사가 경험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적인 부분과 심리적인 측면을 통합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인간 실존의 문제를 공감적으로 수용하는 가장 역동심리치료적인 접근방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신역동에 대한 현대적인 접근들은 인격의 발달을 개인의 원본능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자발적이고 독립적인 체계로서보다는 오히려 인간 상호작용의 경험에서 시작된다고 보게 되었기 때문에 역동적인 인간의 정신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원본능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관계 안에 내재된 상처의 반복적인 경험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같은 관점은 이미 오래 전부터 계속되어온 신학적 관점으로서 정신분석적인 이해의 초점인 자기의 형성이 고립된 개인의 심리 내적인 갈등에 의해서라기보다는 내재화된 인간 상호작용(interpersonal)의 사건들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본다. 개인과 개인이 만나 다양한 관계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상호작용의 내용들은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 맺는 다양한 방식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관계양상의 패턴이며 이 관계 안에서 인간은 삶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나아갈 방향과 기준을 제공받게 된다. 그리므로 선교사가 자신을 둘러싼 주변 인간관계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고 인격적으로 성숙하는 과정은 단순히 심리적인 발달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발달로 이어지며 궁극적으로는 선교사의 안녕과 본래적인 부르심에 전인적인 성장으로 반응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므로 선교사의 역동적 삶에 내포된 인간의 무의식을 더 체계적으로 파악하고 이해하기 위해 정신분석학적 설명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선교사라는 인간 존재를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것을 표현해내는 언어가 필요하고 또 그 언어가 심리학적 언어일 때 보다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정신분석의 기본 이론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지정학설(topographical theory)이다. 이것은 인간의 정신활동을 세 가지의 의식차원-의식·전의식·무의식-으로 구분하여 인식하는 것이다. 현 순간에 있어서 알아차리고 있는 모든 것을 의식(conscious)이라고 한다. 전의식(preconscious)은 지금 당장은 쉽게 기억하거나 표현하지 못해도 주의를 집중하고 노력하면 쉽게 의식화될 수 있는 정신생활의 부분이다. 

이것과는 대조적으로 무의식(unconscious)은 우리 정신 속에 존재하고 있고 말살되거나 망각되지 않았는데도 상당한 심리적 작업이나 노력을 사용하지 않고는 의식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무의식의 내용들은 수치심을 유발하는 것들·죄악감·열등감·상처받은 경험·성적욕구·공격욕구 등으로 의식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만약 이와 같은 무의식의 내용들이 인간의 의식으로 옮겨지면 심각한 불안 증세를 일으키기 때문에 인간은 무의식이 의식화되지 않도록 최대한 자아를 억압하려 한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무의식적 내용을 간과해버리거나 성격의 한 부분으로 치부해버리지만 사실상 이 무의식의 내용들이야말로 자기를 발견하고 이해하여 성장과 성숙으로 이끌 수 있는 핵심내용이다. 의식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던 내용을 의식화시키는 작업이 곧 자기표현적 글쓰기 치료이고 그 과정에서 온전한 자기발견과 성숙을 이루게 된다. 

둘째, 정신결정론(psychic determinism)이다. 이는 모든 신체현상이 인과법칙에 의하여 일어나듯이 정신적 현상도 전에 있었던 어떤 원인에 의해 그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인생 초기에 경험된 5년간의 비합리적인 힘, 무의식적 동기, 생물적이고 본능적인 동기 그리고 심리·성적 사건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어른의 행동은 이미 어린 시절의 경험에 의해서 그 동기가 결정된 것이다. “어른 속에 아이가 살고 있다(child-within)”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자기표현적 글쓰기에는 현재 선교사가 경험한 하나의 사건을 통해 과거를 반추해보고 기억해내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현재의 문제가 곧 과거의 어떤 사건에 의해 형성된 무의식이라는 정신결정론에 근거한 접근이다.

셋째,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 theory)이다. 어린 시절의 대상관계가 성인의 정신생활에서도 계속된다는 이론으로 현재의 인간관계는 이미 과거에 이루어진 관계의 영향을 받는 것이고 대상관계의 내재화는 대부분이 유아적이고 유치한 형태의 인간관계에 기인한 것이다. 성장 후의 분석 상황에서는 전이(transference) 형태로 재현(externalize)되어 나타난다. 상담을 제대로 진행하다보면 수학공식처럼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왜냐하면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다음 만남에서의 내담자의 태도가 달라지고 이것이 내담자를 사로잡고 있는 핵심적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넷째, 성격구조론(structural theory of personality)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성격구조를 원욕(id)·자아(ego)·초자아(super ego)의 세 가지로 구분하였다. 원욕은 검열 받지 않은 생물학적 힘을 나타내고 초자아는 사회의식의 목소리이며 자아는 둘 사이를 중재하고 현실을 다루는 합리적 사고이다. 프로이드의 삼중구조 이론에서의 이드는 욕동(drive)으로 이루어진 무의식적 심리구조물로서 정신에너지의 근본이며 쾌락원칙(pleasure principle)에 따라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지는 본능적 욕망과 욕구들을 만족시킨다. 역동심리학에서는 이와 같이 감추어진 욕구를 핵심감정이라고 부른다.

이 감정 에너지는 분화구를 찾아 폭발하려는 욕구가 있기 때문에 그 흐름을 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보통 때는 자아가 이 감정을 통제하지만 자아가 약해질 때 그 균형이 깨짐으로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결국 인간의 내면에서는 초자아와 자아가 늘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과 같다. 보통의 사람들은 역동적인 감정경험-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을 하는 순간이 있다. 어떤 대상과 어떤 사건 속에서 불쑥 마음 깊은 곳에서 꿈틀대는 감정이 있다. 그것이 불쾌한 감정이었을 경우 대부분 그 감정을 억압하고 페르조나를 쓴다. 그리고 사건이 지나가고 대상과 헤어진 후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순간적 감정에 대한 잔재를 해결한다. 그리고 대수롭지 않은 하나의 사건으로 치부하고 지나쳐버린다. 

하지만 이 감정 에너지의 흐름을 붙잡아 의식적 차원에서 재점검하는 과정을 거쳐야만하고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자기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성찰의 시간이다. 이 시간에 자기표현적 글쓰기를 통해 자기를 다시 만난다. 예를 들어 선교사가 인상깊게 남은 사건을 자기표현적 글쓰기를 통해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한다고 했을 때 그 사건은 감정을 잘 통제했던 사건일 수도 있고 순간적으로 약해진 자아에 균열이 생겨 폭발한 사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찰나를 성찰의 계기로 삼아 그때의 자기를 분석해야 한다. 그래야 반복되는 무의식적 경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그 사건을 영적으로 승화시키는 힘이 초자아이다. 

초자아는 의식과 무의식 속에서 사회문화적 가치와 규범에 근거한 도덕적 양심(moral conscience)과 자아이상(ego-ideal)으로 구성되며 이드의 욕망을 평가하고 조절하는 기능을 하게 된다. 선교사는 초자아가 과대하게 발달되고 심지어 초자아에 편향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 초자아는 오디이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가 해결되는 시기 즉 기본적인 도덕법칙과 부모가 갖고 있는 이상적인 것을 믿고 자기 성격의 일부로 만들어 가는 시기에 형성된다. 이때부터 자기 통제가 부모의 통제를 대신하게 된다. 자아는 현실원칙(reality principle)에 따라 이드의 원초적 욕구와 그것을 통제하는 초자아의 욕구 사이에서 중재하고 조정하는 심리적 기능을 가진다. 자아란 결국 자기의 성격을 집행하는 기본 구조이다. 

이러한 자아의 기능은 의식 속에서 외적 현실에 맞게 내적 욕구를 조정하고 통합하여 결정을 내리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무의식 안에서도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를 통해서 그 역할을 담당한다. 즉, 방어기제란 외적현실에서 용납되지 못하는 내적 욕구들이 발생할 때 본능적 욕구와 초자아의 욕구들 사이에서 생겨나는 갈등을 자아가 해결하려는 노력으로, 갈등으로 인해 생겨난 불안으로부터 균형을 되찾기 위한 무의식적인 방법이다. 방어기제는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인간의 본능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자기를 표현하는 성찰적 글쓰기의 과정 속에는 의식의 흐름에 따는 자기관찰의 힘이 길러지기 때문에 현상에 부딪치는 ‘자기’의 일차적 감정을 솔직하게 기술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곧 자기 방어기제와 연결된다. 이 방어기제는 자기표현적 글쓰기 치료의 원리에서 더 구체적으로 고찰해볼 것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무의식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상황에 직면하면 앞서 한 행동의 유형을 반복적으로 보이게 된다. 따라서 그의 정신분석의 핵심은 인간이 가진 유년의 경험이나 무의식, 트라우마나 몸에 기억된 억압이 완전한 화해 상황에 이르지 못한 것을 참여자가 자기 분석을 통해 스스로 긍정적인 상황으로 대체하는 것을 말한다. 프로이트 자신도 임상기록지를 작성함으로써 글쓰기의 힘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듯이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쓰는 과정에서 무의식에 의해 조정되던 자기를 직면하게 되고 나아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글쓰기는 본래 그 속성상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성찰의 기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글쓰기를 통해 자기의 무의식을 드러내고 그것을 객관적인 눈으로 통찰함으로써 내면의 힘을 키우게 되는 것이다. 결국 자기표현적 글쓰기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 다루는 인간심리의 기본개념과 원리를 ‘자기표현적 글’이라는 방식을 통해 구체화시킨 하나의 응용심리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연재: 분석심리학에 관한 이해

(본 연재는 본인의 논문을 정리한 것으로, 홈페이지의 기능적인 면에서 각주를 달 수 없기에 생략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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