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를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예수님은 왜 이 청지기를 보고 지혜롭다고 하셨을까?’이다. 그리고 우리 눈에 불의하기만 한 이 청기기가 지혜롭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속뜻을 알기 위해 고민하고 고민해봤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 비로서 그 뜻이 무엇인지를 헤아려볼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가 다루고 있는 내용의 핵심은 주인의 뜻이다. 주인은 청기기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눅 16:1)는 말을 듣고 청지기를 불러서 그가 잘못한 일을 꾸짖고 그의 일을 셈하려고 하였다. 우리의 생각에서 보면 주인이 청지기를 꾸짖는 것은 당연히 돈을 잘 벌지 못했기 때문일 것같다. 하지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주인은 빚진 자들이 돈을 얼마를 갚아서 나의 소유가 얼마나 불어나야 하는가, 즉 올리브 오일이나 밀과 같은 물리적이고 물질적인 것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유를 가지고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의 웰빙(Well-being)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집을 관리하는 청기기는 지금 우리시대의 말로는 매니저와 같고, 매니저는 물건을 사고파는 일을 관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일꾼들을 잘 관리하고 그들이 효율적으로 일하도록 도와서 더 효과적인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 그의 역할인 것이다. 예수님은 이런 비유를 통해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사람이 만들어 놓은 전통이나 율법에 얽매여 있고, 사람을 살리는 일보다는 자신의 소유를 지키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계신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함(눅 19:10)”이며, 내 옆에 있는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예수님께 한 것이라고(마 25:40) 말씀하신 것은 곧 하나님을 위한 가장 선한 일은 사람을 섬기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길 원한다면 사람을 사랑하고 섬겨야만 한다. 때문에 예수님의 이 비유는 분명 이유가 있는 비유이며, 매니저 즉 청기기의 역할을 생각해보면 그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청기기에게 있어서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에게 맡겨진 일의 마지막 리포트를 할 때 주인을 기쁘게 해주는 것일 것이다. 일을 마치고 마지막 수출입전표를 만들 때 얼마만큼의 이익을 남겼는가가 청지기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그런데 불의한 청지기는 당시에 자신이 관리해야 했던 빚진 자들의 일을 잘 관리하지 못한 채 방관했거나 신경쓰지 않았음을 주인의 책망을 통해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제서야 빚진 자들의 빚을 탕감해주면서 그들로부터 아주 적은 분량이라도 주인에게 이익을 남길 수 있도록 일을 처리한 것이다. 이처럼 세상 보스의 관심은 마지막의 남긴 이익이다. 하지만 하나님나라 관점에서의 주인의 이익은 마지막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섬겼는지이다.
당시의 시대상황을 보면 이러한 주인의 뜻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빚진 자들이 밭의 소출이 일정할 때는 주인에게 빚을 갚을 수 있겠지만, 이스라엘 당시의 기후를 보면 심한 가뭄이 들면 몇 해 동안도 소출을 거둘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고, 또 다른 여러 이유에서도 수확을 거두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자신이 빚진 것을 갚을 수 없을 것이고, 한 두 해는 빚진 자의 상황이 이해될 수 있겠지만 주인이 항상 그들을 기다려주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빚진 자들이 빚을 계속적으로 갚지 못했을 때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무엇일까? 바로 도망치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청지기는 도망친 빚진 자들로 인해 매년 주인이 벌어들인 소득을 아예 얻지 거둬들이지 못하게 된다. 즉 주인의 소유를 낭비했다는 것은 비단 돈뿐만 아니라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후에 주인이 자신의 청지기가 일을 지혜롭게 처리했다고 칭찬했던 것은 주인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청지기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기술적으로 잘 수행한 것에 대한 칭찬인 것이다.
이 아야기는 단순히 크리스찬의 직업윤리, 도덕적 삶의 미덕과 같은 것을 가르치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크리스챤들이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이다. 다시 말해, 영적인 의미에서 이 비유는 곧 사람들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을 전해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이 땅을 떠나 하나님 나라에 갈 때, 우리는 우리의 소유물, 차, 집, 현금과 같은 것들을 가지고 갈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사람은 우리가 가져가 수 있다. 즉 우리가 사랑하고 섬겼던 사람들의 영혼이 천국에 있을 것이고, 그들이 우리의 상급이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을 대변해주는 지표가 될 것이다.
남편의 이야기가 여기에 아주 적합하단 생각이 든다. 6년 동안 지금 교회를 목회하면서 수없이 많은 어르신들의 장례식을 집도했고, 그분들의 마지막 떠나는 길에 남편은 돌아가신 그분에게 웃으며 이렇게 굿바이 인사를 하곤한단다. “제가 당신의 목사여서 행복했습니다. 당신이 저의 성도가 되어줘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가시면 하나님께 제 얘기 좀 잘 해주세요”라고. 정말 즐겁고 유쾌한 굿바이 인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편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서 분명 우리 성도님들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목사님이 저한테 참 잘해줬습니다. 우리 목사님이 저한테는 좋은 목사님이셨습니다”라고 말할 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남편 역시도 누군가가 그에게 “교회를 위해 무슨 사역을 하셨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남편의 대답은 “제가 저희 공동체를 위해 한 일은 일일이 나열할 정도로 많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의 장례식을 집도했습니다”이다. 그리고 또 “당신의 사역 중에서 어떤 사역이 가장 멋진 사역이었다고 생각합니까?”라고 묻는다면, 남편의 대답은 “저는 장례식 전문목사입니다”일 것이다. 웃프기도 하지만 남편은 이렇게 주님께 고백한다. “주님, 제가 또 한 명의 성도를 주님께 올려드렸습니다.”라고.
우리에게 있어서 정말 값진 상급은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 우리를 사랑해줬던 사람들, 그리고 우리가 섬겼던 그 사람들일 것이다. 우리의 달려갈 길을 다 마친 후 주님나라에 갔을 때, 하나님 나라에서 주님을 만났을 때, 바로 그들의 고백으로 인해 주님이 우리를 알아주신다면 그것만큼 기쁜 일이 있을까?
미래를 위한 가장 좋은 투자는 주식도 아니고, 비트 코인도 아닌 바로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섬기는 것임을 기억하고 싶다.
2021.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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