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생각할 때마다 드는 또 하나의 생각은 ‘우리가 과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따라 정말 거룩할 수 있을까?’이다. 하나님은 분명히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거룩하고 성결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인식은 있지만 그 거룩을 삶으로 구체화시켜 살아가기는 어렵다고 느낄 때가 많다. 하지만 분명 우리가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명령하셨을 것이다.
“거룩한 삶”을 위해 우리가 분명히 인식해야 할 개념은 하나님의 거룩과 인간의 거룩이 다르다는데 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절대적 거룩, 즉 그 어느 것과도 비교가 불가능한 거룩이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여기에 딱 적합한 것 같다. 그렇다. 하나님은 스스로 거룩한 분, 누구와도 거룩의 상태를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 존재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다르다. 피조물인 우리는 유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죄와 끊임없이 싸우는 연약한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애초부터 우리는 거룩할 수 없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거룩을 우리의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그것을 “상태적 거룩”이라고 정의해 볼 수 있다.
상태적 거룩이란 어떤 조건이나 상황에 의해서 거룩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보면, 구약 시대에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때 쓰는 기물들을 우리는 “성물”이라고 부른다. 즉 거룩한 물건이라고 구별하여 세속에 물든 일반인들은 성전에 들어갈 수도 없고, 성물을 만질 수도 없다. 왜냐하면 거룩한 존전에 있는 물건이기때문에 그 안에 있는 모든 기구들은 거룩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즉, 공간이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하나의 상태조건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교회에 가거나 기도원을 갈 때, 혹은 특별한 영적 집회에 간다고 생각해보자. 우리가 예배당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거룩한 공간으로 이동한 것이고, 그리고 그 공간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거룩한 존재가 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아무렴 술집이나 노래방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보다야 교회가 훨씬 더 거룩한 공간이지 않겠는가. 왜냐하면 예배당은 거룩한 목적을 위해 드려진 특별한 공간이기때문이다.
또 하나의 거룩을 위한 상태조건은 시간이다. 하루 24시간의 일상은 모두에게 주어진 시간이지만 그 시간 속에서 하나님을 거억하고 그분과 동행하기 위해 구별해 놓은 우리의 시간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주는 또 하나의 요소가 된다. 그 시간만큼 우리는 거룩으로 한 걸음씩 더 가까이 가게 되는 것이다.
교회에서 행해지는 성만찬은 교회의 예식 중의 하나라는 의미보다는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는 또 한 번의 순간이 아닐까? 거룩하게 구별된 공간, 즉 예배당에서, 거룩하게 구별된 시간, 즉 예배를 드리면서, 주님의 피와 살을 나누며 예수님을 기념하는 순간은 우리에게 거룩 그 자체가 된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은 것을 본 모세가 두려워 떨고 있을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가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네 발의 신을 벗으라”하셨다.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공간은 거룩한 곳이며, 그곳에서 예수님을 기억하기 위한 우리의 의식은 모세가 발에서 신을 벗음으로 주님의 명령에 순종한 것처럼, 주님의 거룩하심을 따라 우리도 거룩하게 되기를 원한다는 믿음의 고백이 될 것이다.
2021.07.07
@ photo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