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공평의 성경정 의미가 무엇일까? 공평이나 형평성의 문제는 오랜 시간동안 정치적 이슈 혹은 사회적 문제로 설명되어온 단어이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평등(equality)과 형평(equity)의 영어 두 단어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한다. 한국어로는 다 비슷한 단어인 것 같지만 영어로 살펴보면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짐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두 단어에 대한 정의를 먼저 해볼 필요가 있다. 평등(Equality)은 모든 사람에게 같은 수준의 지원을 해주고, 동일한 기회를 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형평(Equity)은 사람들의 특별한 필요에 맞게 적절한 지원과 대우를 다양한 수준에서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공평하심은 수없이 많이 나오지만, 특별히 민수기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공평은 이렇다. 이스라엘 모든 족속이 하나님의 제단에 드려야 하는 헌물의 무게는 모두 똑같았다. “은반 하나와 칠십 세겔 무게의 은 바리 하나, 그리고 열 세겔 무게의 금(민 7:10-17)”이었다. 이스라엘 종족의 크기와 숫자, 그들의 경제적 사정에 상관없이 모두 이 만큼의 동일한 양을 제단에 드려야 했다. 

또 세 가지의 희생제물도 있었다. 번제의 목적은 하나님에게 헌신을 다짐하기 위한 고백이었다. 속죄제는 의도치 않은 죄-예를 들면 부주의하게 서원을 한 것과 같은 일-를 지었을 때 그 죄의 용서를 받기 위해 드린 제물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실수를 없애고, 마음과 생각을 정결하게 하기 위해 속죄제를 드렸다. 화목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고 그분앞에 감사하며 드리는 자원제물이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도 차별이 없이 동일한 양의 헌물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겼다.

그런데 레위기에서 나온 하나님의 공평은 이것과 약간 다르다. 모세는 각 사람의 상황에 맞는 자원을 선택하여 하나님께 자신의 책무를 다하라고 말한다. “만일 그의 힘이 적어 양을 바치는 데에 미치지 못하면 그가 지은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여호와께 가져가되 하나는 속죄제물을 삼고 하나는 번제물을 삼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렉 5:6-7)”라고 말하며 사람들의 형편과 상황에 맞는 적절한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도록 규정한다. 

정치적 관점에서의 공평과 성경적 관점에서의 공평이 다른 이유는 그 해석에 있다. 정치적 관점에서의 공평은 모든 자원이나 지원을 받음에 있어서 동일한 기회를 제공받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성경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성경은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받는 것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에게도 공정하고 공평하게 베풀고 섬기는 것 또한 강조되고 있다. 단순히 “받는(receiving)” 개념을 넘어서 “주는(giving)”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오직 공평하게 무엇인가를 제공받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이는 단순한 복음의 소비자(consumer Christian)에 불과하다. 교회가 내가 필요로하는  자원, 격려, 케어를 제공해주면 좋아하고, 교회가 자신의 마음에 만족스럽지 않으면 쉽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저버리고 교회를 떠나는 것을 말한다. 복음의 소비자는 전형적으로 “오늘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를 생각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복음을 소비하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섬기라고 부르셨다. 

인류의 모든 인간이 예수님을 믿고 크리스챤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든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졌다(equality). 하지만 하나님의 공평(fairness)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가 약속하신 그대로 이 땅에 다시 오실 그 때에 공정하게 적용된다(equity).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달리기에 비유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공평의 과정 중에 있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여 출발선에 선 수많은 사람들은 시작할 때 모두 공평한 시작을 하지만(equality), 마지막 결승선을 통과한 사람의 순서는 다르고, 또 열심히 준비한 사람만이 승자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이며(equity), 

결국 이 모든 생각의 정리는 이렇다. 사람들은 보통 공평이나 공정, 혹은 형평성에 대해 무엇인가를 받는 것을 먼저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는가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한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시고, 그분의 공평하심은 우리의 삶의 시작이 아니라 마지막 끝에서 비로서 결정된다.

2021.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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