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렵게 느껴지는 신학적 개념 중의 하나는 “성령”에 관한 것일 것이다. 만약 성령에 대한 정확한 개념이 잡혀있지 않거나 혹은 아직도 이해가 힘들다고 한다면, 걱정하지 말자. 어느 누구도 삼위일체의 성령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초대교회 교부들 역시도 명확하게 이해하게 힘들었고, 그래서 니케아 공회(AD 325)와 칼케돈 공회(AD 451)에서 공통적인 개념이해와 정리를 해두었다. 

성령은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으로부터 아들을 통해 믿는 자들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한분이시면서 동시에 세 분이시고, 또 세분이시지만 또 하나이다. 어렵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해야 할 한가지는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구별된 위격이 아니라 각 위격이 온전한 하나님이시기에, 오직 한 분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성령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몇 가지를 살펴보면 성령을 이해하기 조금 쉬워질 수 있다. 

첫 번째 오해는 성령이 하나님의 일하시는 어떤 힘으로 생각한다는데 있다. “푸뉴마”라는 그리서어를 바람이나 호흡으로 해석하는데, 이 때 성령을 사람이 아닌 사물적 존재인 “그것(it)”으로 해석하지 사람을 표현하는 “그(he)”로 해석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성경에서는 성령을 우리 안에 일하시며 우리를 돕는 분 혹은 상담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또 우리의 위로자(요 14:16)로 말하기도 한다. 또 우리의 말할 수 없는 탄식을 전달하는 분이기도 하다(롬 8:26). 다시 말해, 성경은 성령을 단순히 바람같은 존재로 설명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과 같은 존재, 즉 위로자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오해는 성령을 우리를 위해 일하는 에이전트로 생각하는 경우이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은사에 너무 초점을 맞추어서 신유, 기적, 예언, 혹은 방언과 같은 은사로의 성령을 주로 생각한다. 그래서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문제를 고쳐주고 해결해주어야 한다는 태도를 갖고 기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성령에 대한 적절한 태도가 아니며, 오히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성령께 물어야 한다.

요엘은 “내 영을 사람들에게 부어주리라(3:28)”라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영이 인간에게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말씀은 결국 이루어져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이 다시 임했고(행 2), 성령을 받은 베드로가 “요엘을 통해 예언하신 일이 바로 이것이다”라고 고백했다. 

그런데 성령을 다시 부어주신다, 혹은 성령이 다시 오신다는 말씀이 조금 이상하다. 그렇다면 이전에는 하나님의 성령이 없었단 말인가?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시고 생령이 되도록 그분의 숨을 불어넣어주셨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 있었다. 하지만 인간이 범죄했을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이 인간에게 영원히 머물지 못하도록 하셨고, 우리의 수명을 백 이십년으로 제한하셨다. 하나님의 영이 인간을 떠나셨을 때, 인간은 영생을 꿈꿀 수 없는 단순히 육체를 가진 존재가 되었고,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어졌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영을 잃어버린 존재로, 그렇게 살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예수님이 하나님의 영이 다시 우리에게 임하는 통로가 되어주셨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이 우리안에 거하시게 되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며, “성령을 받으라(요 20:22)”고.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실 수 있다. 만약 어떤 기적이 일어나되,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가르침의 든든한 반석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의심의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성령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하시지 그분 마음대로 독단적으로 일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 7:38-39)”고 예수님은 말씀하셨고, 생수는 곧 성령이기에 누구든 예수님을 믿으면 성령이 그 사람 안에 거하시게 된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통해서 약속하신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신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충만히 임하게 할 수 있을까? 성경적 대답은 아마도 어떤 상황, 어느 때에든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하나님을 시험하려 해서는 안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님을 시험한다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 양심에 무엇인가를 말씀하실 때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울 왕이 하나님을 기만하는 마음과 태도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의 영이 그를 떠났고, 사단의 영이 그를 다스렸다(삼상 16:14)”. 만약 하나님의 영이 떠나면, 그 자리에 사단의 영이 대신 자리잡게 된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떠나시면 그 안에 온잦 영적인 불안, 분노, 걱정, 두려움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우리 몸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장소이기에(고전 6:19)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히 채워져야 한다. 

존 웨슬리의 말을 빌리자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성령이 우리를 가르치시고 성결케 하시기에 우리의 마음과 삶에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져야 한다. 그래야만 예수님을 통해 성령이 일하심으로 우리에게 기쁨과 평안이 임하게 될 것이다. 우리 마음에 말씀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에 귀기울이고, 그분을 믿고 순종함으로 나아가자. 

2021.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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