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한 네 가지의 그리스어가 있다. 열정적인 사랑 혹은 로맨틱한 사랑을 의미하는 에로스(Eros), 가족간의 사랑을 의미하는 스톨지(Storge), 우정을 의미하는 필로에(Philia), 그리고 이기심없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의미하는 아가페(Agape)가 그것이다. 

이 중에서 에로스, 스톨지, 필로에는 한 개인의 편애와 애정을 담고 있다. 에로스는 깊은 애정에서 흘러나오는 강렬한 사랑이기에 그러하며 부모자식간의 사랑인 스톨지에도 편애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이삭은 에서를, 리브가는 야곱을 더욱 사랑한데서 그 예를 살펴볼 수 있다(창 25:28).

이 세 가지의 사랑은 모드 감정에 기초한 사랑이다. 하지만 아가페 사랑은 개인의 선호도를 배제한, 오직 “결정(decision)”에 기초한 사랑이다. 다시 말해, 내가 아내 혹은 남편을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그 말은 단순히 상대방의 헤어스타일이나 옷입는 취향을 사랑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가 어떤 상태에 있어도, 심지어 나를 향해 미친듯이 화내며 소리친다할지라도 그를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결혼이라는 의식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기로 결심했기때문에 그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인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아가페의 사랑이 성령을 받는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희생적 사랑을 의미하는 아가페는 곧 자신을 버리는,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을 의미하기에, 예수님이 그러하셨듯 제자들 역시 예수님을 사랑하고, 또 그분의 말씀에 순종할 때 이들은 성령을 받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또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성령으로 충만해진다는 말의 의미가 우리의 구원의 문제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성령은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 다만 구원에 대한 개인적 확신을 줄 뿐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고, 우리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을 받은 것이기때문이다(엡 2:8). 그렇지만 여기서 또 문제는 때때로 사람들은 자신이 구원의 선물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구원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산다는데 있다.

존 웨슬리도 그랬다. 그가 영국국교회의 성직자로 안수받고 신학교에서 성경과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재임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에 대한 자신감도, 기쁨도 없었다. 그가 이런 구원의 확신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때, 올더스케이트(Aldersgate)에서 성령충만의 경험을 했던 것이다. 

이 경험 이후 웨슬리는 크리스챤의 구원의 신학적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회개는 집 앞 포치(Porch)이고, 믿음은 집현관문이며, 거룩은 성령과 동행하며 사는 것으로 곧 그 집 자체를 의미한다. 물론 우리는 포치를 통과해 집앞문까지 가지 못하면 집안에 들어설 수도 없다. 즉 회개와 믿음을 거치지 않고서는 성령과 동행하는 삶 역시 불가능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성령이 곧 구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또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인도함을 받을 수 있고,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부끄러움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설 수 있게 된다. 

이렇듯 성령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영적 유익을 가져다준다.

첫째,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해준다(롬 8:16)”.

둘째, 우리가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것을 믿으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는다(엡 1:13)”.

인치심을 받는다는 말은 마치 법적 효력을 가진 도장처럼 다가올 영적 세상에서  확실한 증거를 얻는다는 말이다. 이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 문 앞에 양의 피를 바름으로 인해 죽음의 재앙이 그들에게 넘어갔던 것과 같은 증거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성령으로 충만할 수 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우리가 예수님이 가르치고 명령하신 것에 순종하고, 그분을 사랑하면, 성령이 친히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과 성령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성령이 우리안에 거하시기를 간구해야 한다. 우리가 차를 사서 차량등록을 마치면 그 차는 이미 우리의 소유가 된다. 소유권을 변경하지 않는 이상, 그 차는 우리의 것이다. 하지만 그 차를 실제로 움직이고 운전하기 위해서는 매번 기름을 채워넣어야 한다. 구원은 이와 같다. 이미 얻은 구원은 변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선한 일을 감당하기 위한 지혜와 힘과 능력의 원천은 성령충만에 있다. 

2022.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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