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왜 인간에게 타락을 허락하신것일까?” 이 질문은, “하나님은 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타락하게 하신 것일까?”와 같은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고민은 하나님의 사랑이 손에 닿을 수 없는 먼 곳에서 우리가 숨쉬는 그곳까지 찾아오신 과정을 이해하게 도와준다.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이미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함을 받은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 만약 우리가 프로그래밍 된 로봇과 같은 존재였다면 하나님의 조정에 의해 움직이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물건에 불과하다.
예수님 역시 자유 의지를 가지셨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주옵소서. 하지만 나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고백하셨듯, 그분은 당신의 자유의지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선으로 사용하셨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분이 겪는 고통, 슬픔,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한계 때문에 울며 기도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계획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함을 입은 인간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상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며 영원한 기쁨을 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선악과 사건(창3장)으로 인간이 타락한 이후, 하나님의 창조이야기는 구원과 회복의 이야기로 바뀌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김으로 인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깨뜨려버렸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져버린 아담과 하와는 더 이상 하나님과 한 공간에 있을 수 없었다. 벗은 몸이 부끄러워 하나님을 피해 도망쳤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그들을 위해, 또 인류를 위해 그들을 지키고 사랑하는 방법을 만드셨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떻게 우리에게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지는 이러하다.
-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으로 인간은 하나님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관계가 깨어졌고, 구약시대 전체를 통틀어 하나님은 꿈과 비전, 천사,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다.
- 출애굽 시대에 하나님은 시내산에 임재하사 모세를 통해 말씀하셨다.
- 하나님은 조금 더 가까이 내려오사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고 있는 캠프 안에 있는 “성막”에서 말씀하셨다.
- 다윗을 통해 성전을 짓게 하시고,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 안으로 내려오사 말씀하셨다.
- 비록 하나님이 예루살렘 성전안에 거하신다할지라도 오직 한 사람 제사장만이 지성소에 일년에 한 번 들어갈 수 있었고, 여전히 백성들은 살아계신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었다.
-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후, 하나님은 성소의 휘장을 찢으시고,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모든 사람에게 열어놓으셨다.
-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 하나님은 성령님을 보내셔서 우리 개개인의 마음을 그분이 거하시는 장소로 만드셨다. 우리의 마음이 곧 성령의 전이며, 하나님은 우리와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 계신다.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신다(계 21:3)”.
온 시대를 통틀어, 구약과 신약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사랑은 저 먼 하늘에서부터 점진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사 마침내 우리 마음에 그분의 거하실 처소를 마련하셨다. 너무 가까워 몰랐다면, 이제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지, 그리고 성령의 거하심에 합당한 마음으로 청소되어 있는지 말이다.
2022.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