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귀를 타고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호산나 찬송하리로다”를 외치며 예수님을 환영하고 환호했던 군중들은 불과 며칠이 지난 후, “십자가에 못박으라” “예수를 죽이라”고 고함치는 무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을 관찰자적 입장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첫 번째 시선,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님을 찬양했던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 밖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으로 인해 시작될 메시야적 왕국, 즉 왕이신 예수님이 자신들의 순례자적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왕국을 건설해줄 것을 기대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두 번째 시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싫어했던 사람들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으로서, 그들은 비록 종교지도자들이기는 했지만, 돈을 버는 일에 관심이 많은 예루살렘 성 안에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드려지는 각종 절기 때 예물로 드리는 양이나 비둘기를 팔 거나, 혹은 돈을 바꿔주는 일을 함으로 돈을 벌었고, 예수님은 그런 그들의 삶의 악함을 지적하고 화를 내셨기에 예수님을 싫어했습니다.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예수님을 옹호하는 군중은 온데간데 없고, 오직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 소리치는 사람들 밖에 없었던 이유 또한, 예수님이 자신들이 원하는 왕국을 건설할 분이 아님을 알고 그를 따랐던 자들이 등을 돌린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제자들도 예수님을 배반하고, 도망쳤습니다.
세 번째 시선, 본디오 빌라도는 비록 예수님이 처형당할 일은 한 것이라 믿지는 않았지만 절기 때 유대인들로부터 세금을 거둬들이고, 그들에게 평화를 주는 대신 로마제국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았기에, 군중들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군중의 고함에 자신의 목소리를 숨죽인채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했습니다.
네 번째 시선,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팔았고, 베드로는 그분을 세번 부인했으며, 예수님의 사랑하시던 요한 역시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얽힌 다양한 주변인물의 시선을 보면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반대하거나 등을 진 이유를 고민하게 되었고, 결국 사람들은 예수님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거나,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위해, 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십자가를 기꺼이 감당하고 있는가?” 질문해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대답은 어떻습니까?
그리고 예수님을 찬양하며 환호하던 입이 예수님을 처형하고 죽이라는 저주의 말을 쏟아내는 입술이 되었던 상황을 보며, 우리의 입술이 오롯이, 또 한결같이 주님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입술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해봅니다.
2022.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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