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을 언급하자면 수도 없이 많겠지만 그 중 아브라함은 단연 손꼽히는 인물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한 땅으로 가라고 명하셨을 때, 그가 살던 하란이라는 땅은 그에게 익숙하고 안전한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명하신 가나안은 수많은 불확실성을 가진 그저 약속의 땅이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가 가야할 그 땅이 어떤 곳인지 전혀 알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그 땅을 유업으로 취했고, 순종하여 길을 떠났습니다. 믿음으로 그는 보이지 않는 미지의 그 땅에 자신의 집을 세운 것입니다.
이런 그의 믿음은 소금같은 역할로 비유되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그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소금은 나트륨과 염화, 이 두가지의 복잡한 요소의 결합으로 만들어집니다. 불행하게도 이 두 화학성분은 단독으로 사용되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물질이 되지만, 하나로 결합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 몸의 필수성분인 소금이 되어 몸의 정상적 활동을 돕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 역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것과 믿음으로 행하는 것, 이 두 가지가 완벽히 결합했을 때 비로소 가능했습니다.
하나님은 늘 아브라함과 함께 하셨고, 그가 하나님을 믿고 그 약속을 붙잡으며 한 방향으로 쭉 믿음의 길을 걸었기에 그것을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브라함의 믿음의 또 다른 정수는 그의 나이의 어떠함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따랐다는데 있습니다. 그는 75세라는 꽤 많은 나이에 고향을 떠나 약속의 땅을 향해 떠났고, 아들을 주시겠노라 약속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믿었을 때, 그의 나이 100세에 아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60세 이후 은퇴할 나이가 되면 자녀 양육에서도, 또 교회 일에서도 뒤로 물러설 나이, 즉 모든 것에 대해 은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기를하나님은 그분의 영을 모든 육체에 부으사, 자녀들은 예언하고, 젊은이는 환상을 보고, 늙은이는 꿈을 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은 차별이 없으시기에, 남녀노소 관계 없이 그분의 꿈을 부어주기 영적인 일에 은퇴란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믿음, 우리의 선택, 우리의 꿈, 그리고 그 꿈을 향한 걸음이 후손들을 축복의 삶으로 인도할 수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정반대의 방향으로 후손들을 인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의 북한을 있게 한 김일성은 장로교집안에서 자랐고, 할아버지가 장로교 목회자였으며, 그의 아버지는 선교사가 세운 학교에 다녔고 교회의 장로였습니다. 하지만 이 장로교 목사님의 손자는 훗날 독재가가 되어 수많은 크리스챤을 죽이는 인물이 되었고, 그가 세운 나라는 지금도 더 많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 파괴적인 무기를 계발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을 거스르기로 결정하고 난 후, 그 아들, 또 그 손주에 걸쳐 사악한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한 사람의 영적인 삶과 결정이 그 자신 뿐만아니라 후손들의 영적 삶의 방향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봅니다. 원인이 없이는 결과가 없듯이, 우리가만든 그 어떤 원인이 훗날 어떤 결과로 반드시 나오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축복이 우리의 축복이 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그 길을 걷기로 결심하며, 또 그 방향을 향해 실제적인 걸음을 떼야하는 것임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202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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