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1-3).” 이 말씀의 뜻을 여러분은 어떻게 이해하고 계십니까?

사도 요한은 여기에서 “말씀”으로 번역된 그리스어인 “로고스”가 누구인지에 대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그 태초에 로고스가 있었고, 이는 예수님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로고스로 하나님과 함께 계신 분이었지만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세상에 육신의 몸을 입고 태어나셨을 때, 그는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바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로 말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그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을 때,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가 지어준 ‘여호수아’라는 이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세상의 구원자, 즉 메시야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와 로고스는 동일 인물입니다. 그분께서 삼위일체의 한 위격으로서 하나님과 함께 천국에 계실 때는 ‘로고스’로 존재하시지만,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을 때는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 예수’로 불리우셨습니다.

그런데 이 로고스가 세상에 오실 때 그분의 주된 임무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빛을 전해주는 구원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로고스는 거룩한 빛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천국에 계시다가 타락한 인류가 어둠 속을 방황하고 두려움과 고통에 신음하고 있을 때, 우리의 갈 길을 밝히 보이시려고 우리 가운데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오신 것입니다.

어린 자녀가 밤이 늦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으면 부모는 등불을 들고 밖으로 나가 자식이 오는 길목을 비춰봅니다. 언제나 올까, 어디에 있을까, 혹시 집에 오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걱정하면서 말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우리가 이 땅에서의 영적 여정을 거쳐가는 과정에서 어둠 속을 헤매고 있지는 않을까 걱정하시며 빛되신 예수님을 보내셨고, 그 빛을 보고 올바른 길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수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그 빛을 알아보지 못한채 방황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오직 소수의 목자들과 동방박사 세 사람, 그리고 세례 요한만 그분을 알아봤습니다.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위해서는 증인이 필요하지 않으시지만, 분명 그들 가운데 있지만 그분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증거자를 필요로 하십니다.

이 시대에 누가 예수님의 증거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바로 우리입니다. 교회 공동체로 모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빛되신 예수님을 온전히 알지 못한채 어둠 속을 헤매이는 사람들에게 그분이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세례 요한과 같은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더불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우리 삶의 목적과 영원한 소망과 흔들림없는 기초를 세워나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024.07.07

@ Photon on UnsplashMads Schmidt Rasmus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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