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독서
바이마르(Weimar) 공국: 독일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작은 영방국가로, 특히 문학과 철학, 음악, 예술의 중심지로 유명하다.
: 독일어: Herzogtum Sachsen-Weimar(작센바이마르 공국)
: 위치- 오늘날 독일 중부의 튀링켄 지역
: 시기- 1572년 작센바이마르 공국이 성립했으며, 1815년에는 대공국으로 승격되었다.
: 공국은 공작(Duke)이 통치하는 국가를 뜻한다. 왕이 다스리는 왕국보다 일반적으로 지위가 낮았지만, 독립적인 정치 체제를 갖춘 경우도 있었다.
: 바이마르가 유명한 이유-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그는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며, 바이마르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며 궁정 업무와 문화 발전에도 관여했다.
: 바이마르 공국, 대공국- 군주가 통치하던 시대의 국가/ 바이마르 공화국-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 수립된 민주공화국
: 현재의 바이마르는 독일을 대표하는 문화, 문학, 예술의 도시
: 괴테의 생가와 기념관, 실러의 집, 역사적인 궁전과 정원이 보존되어 있다.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 스코틀랜드의 철학자이자 역사가로, 서양 근대 철학에서 경험론과 회의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 <인간 오성에 관한 탐구>
: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인과관계와 종교적 믿음, 도덕적 판단을 철학적으로 분석했따.
: 흄 철학의 핵심 3가지- 1. 경험론(empiricism): 흄은 인간의 지식이 감각 경험과 내적 경험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불이 뜨겁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실제로 불의 열기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2. 인과관계에 대한 회의: 과거에 반복해서 일어난 일이 미래에도 반드시 똑같이 일어날 것이라고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는 것. 3. 도덕과 감정: 훔은 도덕적 판단이 이성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사람이 어떤 행동을 선하거나 악하다고 판단할 대는 공감, 감정 인간의 성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성은 행동의 수단과 결과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무엇을 바람직하게 여기는지는 감정도 관여한다
: 훔과 칸트의 관계- 흄은 우리가 당연하게 믿는 지식의 근거를 의심하고 경험의 한계를 탐구했고, 칸트는 흄의 문제 제기를 받아들여 인간의 경험을 통해 지식을 형성하는 조건과 한계를 설명하려 했다.
: 데이비드 흄은 우리가 확실하다고 믿는 지식도 경험과 습관에 의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의 이름은 현대에서도 기압의 단위 펙토파스칼로 남아 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라는 말로 유명한 철학서 <팡세>를 남겼다.
현대의 전문가인 학자가 이를테면 재야의 저작자나 지식인을 제너럴리스트로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즉 범위는 넓지만 철저하지 못하고 정확도가 낮은 어중간한 지식만 남용하고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언어는 문법에 따라 차례대로 말을 늘어놓지 않으면 의미를 전달할 수 없고, 아무리 많은 말을 사용하더라도 의미의 일부조차 적확하게 표현해 낼 수 없다.
드뷔시의 피아노곡 <월광(Clair de Lune)>: 프랑스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
현대인은 비루한 욕망의 일부분을 음란한 장소에서 남몰래 맛보고 주식과 연금을 계산하면서 노화와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 삶의 방식은 땅속에 사는 벌레나 매한가지다. 이렇게 표현한 것은 자신의 주변만 주된 관심사로 여기며 살기 때문이다. 사고방식의 비상도, 행동의 모험도 없다. 손 안의 작은 사안만 좇는 스페셜리스트는 될 수 있을지언정 날아다니며 시공간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는 될 수 없다.
16세기 연금술사 파우스트(Faust): 독일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진 신비로운 학자이자 점성술사, 연금술사로, 그는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치료와 점술 등을 했다.
: 악마와 계약했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16세기 유럽에서는 연금술과 점성술, 마술, 또 자연의 비밀을 밝히려는 탐구가 신비주의나 종교적 의심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1587년에 <파우스트 박사의 이야기(Historia von D. Johann Fausten)>라는 책이 출판되었는데, 이 책은 파우스트가 악마와 계약하고 결국 영혼을 잃는다는 전설을 널리 퍼뜨렸다.
: 독일 작가 괴테는 이 오래된 전설을 바탕으로 <파우스트>를 집필했고, 파우스트는 유럽 문학에서 인간의 끝없는 지식욕과 욕망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다.
조악하다: 품질이나 솜씨가 거칠고 나쁘다(조: 거칠다, 정교하지 못하다/ 악: 나쁘다, 좋지 않다)
: 조잡하다- 물건이나 표현이 엉성하고 정교하지 못하다
: 허술하다- 빈틈이 많고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다
: 투박하다- 세련되지는 않지만 소박하고 꾸밈이 없다
외국어 학습의 기초를 만드는 힘은 모국어의 풍부한 독서량에서 나온다.
라틴어 프리우스(prius): 먼저, 이전에, 앞서=선구자
라틴어 아우디(Audi): 들어라! 들으라!
독학의 초기에 꼭 필요한 요소는 물리적인 힘, 즉 근력이다.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무엇인가를 손댄다는 것은 다른 것에 손을 대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들은 우주를 낙하하여 별들과 함께 윤무를 춘다.
자신에게 의미 있는 세계와 인생을 찾기 위해서라도 독학을 하거나 생활할 때 관찰의 눈을 날카롭게 벼리고, 생생한 통찰을 가능케 할 만한 새로운 자신을 매일같이 창조해 가야 하지 않을까.
– <지성만이 무기다> 시라토리 하루히코의 책에서 발췌, 인용된 정보들은 챗지피티를 통해.
오늘의 말씀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요한복음 7:3–5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Jesus’ brothers said to him, “You ought to leave here and go to Judea, so that your disciples may see the miracles you do. No one who wants to become a public figure acts in secret. Since you are doing these things, show yourself to the world.” For even his own brothers did not believe in him.
중학교 때 영어 공부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유명한 문구는 “Boys, be ambitious!”였던 것 같다. 그때는 무슨 뜻인지도 잘 몰랐지만, 그저 단어 하나하나를 외우기에 급급했던 기억이 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다가 예수님의 형제들이 한 말에 눈길이 머문다.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말에서 인간 보편의 심리를 발견한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알려지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 같다. 초야에 묻혀 살아가는 것보다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며 살아가고 싶은 마음 말이다. 세상에 이름을 널리 알릴 만큼 대단한 인물이 되겠다는 원대한 포부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은 알려진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 욕구가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예수님의 형제들도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더 많은 사람에게 자신을 드러내라고 부추긴다. 유대로 가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행하는 일을 보이고, 세상에 자신을 나타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말에 흔들리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음을 아셨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기대와 분위기에 편승하거나, 지금 나서지 않으면 기회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조급함에 이끌리지 않으셨다.
오늘 말씀 앞에서 내 안에도 자리 잡고 있는 마음을 들여다본다. 알려지고 싶은 마음, 나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 묻혀 지내는 것이 못내 아쉬워 조금이라도 더 알려진 자리로 나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 그 마음이 내 안에서도 꿈틀거리고 있지는 않은가?
주변 사람들이 나를 알아봐 주기를 바라고, 내가 가진 재능과 가능성을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 주고 싶을 때가 있다. 아직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기도 하고, 지금보다 더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하는 현실에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나를 드러내고 싶어 한다.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라는 주변의 말에 흔들리는 것은 어쩌면 다른 사람들의 인정만을 바라는 마음 때문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가능성을 아직 충분히 펼치지 못했다는 아쉬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사람들에게 나를 드러낼 기회인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일하실 때인가?
세상에 내가 알려지기를 바라기에 앞서,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지금이 하나님의 때인가?” 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내가 준비되었다고 생각하는 때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때는 다를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알아봐 주는 때와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시는 때도 반드시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묻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조급해할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시간에도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실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 나에게 주어진 재능이 아직 충분히 발휘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면, 오늘 말씀은 내 현재를 돌아보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답답하게 느껴지더라도, 그곳에서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먼저 물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 말씀은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전에 먼저 나 자신에게 들려주어야 할 말씀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누군가에게도 주님께서 조용히 건네시는 음성일 수 있겠다.
나는 지금 세상에 나를 드러내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오늘도 이 질문을 마음에 품고, 내가 원하는 때보다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