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을 “대!한!민!국!”이란 외침으로 하나되게 만들었던 순간이 있다. 2002년 월드컵이 그랬다. 대한민국이 하나되어 응원했던 또 다른 순간은 김연아가 대한민국 사상 처음으로 피켜 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따는 감격적인 장면을 볼 때였다. 그리고 또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은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대회에서 금메달을 땀으로 인해 우리의 역사적 아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놓았던 순간일 것이다.  이렇듯 스포츠는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의 정신으로 응원하게 하는 어떤 힘이 있다. 

특히 우리 크리스챤들에게 있어서 마라톤은 스포츠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경기이다. 왜냐하면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여정을 결승선까지 완주하는 달리기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달리기는 100m 달리기와 같이 짭은 순간의 스피드로 결승선을 통과하는 경기가 아니다. 마라톤은 5분동안 1마일을 달리는 페이스를 꾸준히 유지해야만 완주할 수 있는 장거리 경주이다.

대표적인 마라톤 대회인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여성이 그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5명의 페이스 메이커를 고용했다. 한 명의 페이스 메이커가 5마일동안 그녀의 페이스르 체크해주면 그의 일은 끝난다. 그리고 그 다음 페이스 메이커가 다음 5마일의 페이스를 체크해준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성공적으로 마라톤을 완주했다. 마라톤에서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은 이만큼 중요한 일이다. 너무 빨리 달려도, 또 너무 느리게 달려도 제 시간에 완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 나라에 끝까지 완주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페이스가 있어야만 한다. 빨리 달리는 누군가를 따라간다고해서 우리의 신앙이 그들과 똑같아 질수도 없고, 또 나보다 앞서 달리는 그가 결승선을 통과할지의 여부도 우리는 모른다. 우리 역시도 훗날 골라인(goal line)에멋지게 들어갈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끝에 도달하기 까지 우리 앞에 펼쳐진 수많은 시련과 난관이 있기 때문이다.

요한 계시록에 보면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가 나온다. 그 중 에베소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메시지에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는 말씀이 나온다.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향한 칭찬으로 그 메시지를 시작하신다. 그들의 인내와 수고, 악을 용납하지 않은 것, 게으르지 않은 것을 칭찬하신다. 그러나 곧 이어서 하신 말씀은 “책망할 한 가지가 있으니 곧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다”이다. 그들의 과거는 칭찬받을 만한 것이었지만, 그들의 현재는 책망 받을 한 가지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한 가지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서 그들의 미래는 결정되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의 여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려가야 한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디 달릴 수도 있고, 또 남들보다 조금 빠른 스피드로 달릴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만의 페이스를 찾고, 그 페이스를 유지하며, 꾸준히 달리는 것이다. 처음 마음 먹은 그대로, 처음 사랑 그대로 말이다. 

레이건 대통령 재임 시절, 백악관에 초청된 한 여성이 있었는데, 그녀는 뉴욕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여 11시간 만에 완주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선천성 소아마비 환자였고, 프로페셔널 선수가 아니었다. 물론 우승과도 거리가 먼 아마추어 마라토너이며 정상적인 선수와는 너무도 다른 경주를 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만의 페이스로 끝까지 완주했고, 보는 이들을 감동케했다. 

프로페셔널한 그리스도인이란 존재할 수 없다. 오직 자신만의 페이스로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가는 한결같은 그리스도인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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