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독서

아래의 인용은 블레즈 파스칼의 <팡세>를 읽으며 발췌한 내용이고, 필요한 정보를 챗지피티를 통해 간략히 조사하였다.

위대한 자나 비천한 자나 동일한 불행, 동일한 슬픔, 동일한 정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전자는 수레바퀴의 꼭대기에 있고 후자는 중심과 가까운 부분에 있다. 따라서 비천한 자는 동일하게 회전하더라도 거의 요동하지 않는다.

사소한 일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민감하며, 최고로 중요한 대상에 대해서는 둔감한 것을 바라보는 것은 기괴한 일이다.

생명이 여덟 시간 밖에 남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자.

우리와 천국 혹은 지옥 사이에는 오직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생명만이 존재할 뿐이다.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편을 선택할 때, 이기는 경우와 지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당신이 이긴다면 모든 것을 얻을 것이다. 당신이 진다면 아무 것도 잃어버릴 것이 없다. 그렇다면 주저할 필요없이 하나님이 존재하는 편을 선택하라.

모든 도박하는 사람들이 불확실성을 위해 확실한 것을 건다.

“나는 신앙을 가지자마자 쾌락을 포기할 것이다”라고 그들은 말한다. 나는 당신에게 “당신의 쾌락을 포기하자마자 신앙을 가지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 영국의 군인, 정치자, 영국의 호국경(Lord Protector), 1599-1658

: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

1) 영국 내전(1642-1651): 크롬웰은 왕권과 맞서 의회파 군대를 이끌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 찰스 1세의 처형(1649): 왕이 재판을 받고 처형된 후 영국은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정을 수립했다.

3) 호국경 통치(1653-1658): 크롬웰은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며 영국을 통치했다.

4) 왕정복고(1660): 크롬웰 사후 아들 리처드가 원력을 유지하지 못했고, 결국 찰스 2세가 왕위에 올라 군주제가 복원되었다.

  • 마크로바우스(Macrobius): 암브로시우스 테오도시우스 마크로비우스(Ambrosius Theodosius Macrobius)

: 고대 로마의 작가이자 철학자, 약 4세기 말-5세기 초

: 주요 저서: <사투르날리아(Saturnalia)>- 로마의 농신제(Saturnalia) 기간에 여러 학자와 귀족이 모여 문학, 철학, 종교, 역사, 풍습 등에 관해 대화하는 형식으로 쓰인 책

<스키피오의 꿈 주석(Commentary on the Dream of Scipio)>- 키케로의 작품에 나오는 스키피오의 꿈을 해석하면서 영혼, 우주, 천체의 질서와 철학적 사상을 다룬다,

오늘의 말씀

아래의 글은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을 기록한 글이다.

내 영이 여전히 주님을 기뻐하는 평범한 어느 날

요한복음 21:19 Jesus said this to indicate the kind of death by which Peter would glorify God.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실, 곧 우리의 죽음에 대해 한 치 앞도 모른다는 지극히 당연한 인간의 유한함과 한계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다시금 발견한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어떤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 이미 알고 계셨고, 그 죽음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의 호흡이 끊어지는 순간은 우리에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얼마나 깊이 인식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은 평면 위를 따라가는 일직선의 시간과 같다. 우리는 그 시간 속에서 현재만을 바라볼 수 있을 뿐,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은 다르다. 마치 우주에서 인공위성이 지구를 내려다보듯,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입체적으로 바라보시며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까지 알고 계신다.

그렇기에 나의 죽음의 순간까지 아시는 주님 앞에서 겸손하기를 원한다. 또한 그분께 나의 생의 마지막을 구하는 기도도 잊지 않는다.

나는 모세의 마지막 모습이 내가 기도하는 나의 마지막이 되기를, 그리고 나의 가족의 마지막 모습이 되기를 기도한다.

“모세가 죽을 때 나이가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신명기 34:7)

내 육체가 여전히 건강할 때, 내 마음이 여전히 평안할 때, 그리고 내 영이 여전히 주님을 기뻐하는 평범한 어느 날, 편안하게 주님을 뵙기를 소망하며 기도한다.

그러니 그 믿음으로 오늘을 살자.

그들의 첫 제단

창세기 13:4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아브람이 벧엘에 이르렀을 때, 그는 떠올렸을 것이다. 이곳이 자신이 처음으로 제단을 쌓았던 곳이며, 그곳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 곳이라는 사실을.

수없이 많이 읽어 왔던 창세기의 이 부분인데, 오늘 하나님께서는 내 눈에 이 말씀을 새롭게 보여 주시고, 우리 교회를 향한 소망과 기도를 담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하다.

우리 교회에는 교회에 다녀 본 적도 없고, 예수님을 믿어 본 적은 더더욱 없는 초신자들이 나온다. 자발적으로 교회에 온 것이라기보다는 결혼한 아내와 함께 그저 따라 나왔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어쨌든 성경을 한 번도 읽어 보지 않았던 이들이 우리 교회에 나오고 있다.

이 말씀 앞에서 나는 기도하게 된다.

생애 처음으로 교회에 나온 이들에게 우리 교회가 그들의 첫 제단이 되기를. 이곳이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곳, 하나님의 이름을 처음으로 부르는 곳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아니,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려고 이 말씀을 통해 내게 미리 보여 주신 것 같다. 소망을 품고 기도하라고, 아직 눈앞에 보이지 않더라도 믿음으로 바라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주님, 그렇게 이루어 주실 줄 믿고 감사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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