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부터 사람이 모든 생물과 달랐던 점은 하나님이 그분의 호흡을 불어넣어주심으로 인간이 생령이 되게 하셨다는데 있다. 하나님의 호흡을 나누심으로 인해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이 들어왔고, 이 하나님의 영으로 살아가는 자라야 영적인 사람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담의 범죄함으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하나님은 인간과 그분사이에 분명한 경계선을 만드셨다.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니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창 6:3)”하셨다. 영적 존재에서 육적인 존재로 되어버렸고,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었던 우리의 생명은 120년이라는 이땅에서의 제한된 시간을 사는 유한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상실하였고, 이제 생명나무는 그가 언제든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나무가 아니라 가까이 접근할 수 없는 방어막이 쳐진 나무가 되어버렸다.
육적인 삶이란 모든 인간이 가진 자연적인 삶이다. 정해진 시간의 한계, 즉 120년이라는 최대치를 넘치 못하는 유한한 삶이며, 하나님의 영원에 도달하지 못하는 인생이다. 만약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지 못한다면, 우린 그저 육적인 존재이다. 마치 동물처럼 유한한 생명을 살다가 죽는 존재인 것이다. 동물은 하나님으로부터 영원을 약속받지 못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분의 영을, 호흡을 동물과 나누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에게 그분의 영을 부어주셨다.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았다. 다시 말해 우리가 하나님의 영을 잃어버리면, 동시에 영원한 삶을 상실하게 된다. 우리가 영원성을 잃어버리면, 하나님의 영이 없이 살아가는 동물과 별반 다르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영을 가진 자로 살아갈 수 있을까? 예수님은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을 불어넣어주실 수 있으시다. 그렇기에 영적인 사람이라면 예수님의 가르침에 깊이 머물어 그분의 말씀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맛볼 수 있는 길을 여시는 유일한 분이시며, 하나님은 단 하나의 길이신 예수님을 통해 하늘로부터 성령을 부어주신다.
그 어떤 신령한 현상이든지간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가르침이라는 탄탄한 기초가 없다면 그것은 의심의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성령이 하시는 일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성령은 그분 마음대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의 순종적인 관계 안에서 일하신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요 7:37-39).”
바람이 임의로 불매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요3:),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아니면 영적 현상을 이해하기도 힘들고 또 영적인 일을 분별하기도 힘들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정확한 정의를 내려야 한다. 우리가 육적인 그리스도인인지, 아니면 영적인 그리스도인인지.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성령 안에서 영적 분별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을 판단할 자격도, 능력도 없으며, 하나님의 영에 속하지 않는 사람 역시 판단자격이 없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영적인 사람이라면 적어도 그 안에서 역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선한 것을 분별하는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고전 2:15).” 우리가 만약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영적 그리스도인이라면 무엇이든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