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주 흥미로운 기사가 있었는데, 그 기사의 제목은 “기독교가 문제가 아니라 성경이 문제다”였다. 저자는 만약 크리스챤들이 성경을 역사의 한 부분으로 이해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값없이 받을 수 있는 구원과 자선에 대해 가르치면 되지 그 외의 것을 가르칠 필요가 없다가 제안한다. 아마도 저자는 전통적인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이 현대 사회와 잘 맞지 않기에 성경은 구식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성경은 절대 시대착오적이거나 구시대적인 산물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분명히 “나는 어제도 있었고, 오늘도 있으며, 장차 올 이다”라고 말씀하셨기에 성경은 결코 죽어있는 말씀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 가운데 살아서 역사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기에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할(딤후 3:16-17)”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들이 매일매일 선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준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기독교의 진리와 가르침이 자신들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예수님은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고 말씀하셨다. 

느헤미야를 보면,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 예루살렘이 파괴되었고, 원수들은 수세대의 유대인들에 의해 전수되던 그들의 유산을 빼앗아갔다. 더 가슴아픈 일은 하나님의 약속을 유업으로 받은 예루살렘의 젊은이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낯선 외국 땅에서 포로로 50년 이상을 살았다. 이로 인해 바벨론의 언어와 문화를 배워야만했고, 또 일부는 그곳에서 죽었다. 상당수의 전도유망한 젊은이들은 유대의 유력한 가문에서 나고 자랐지만 예루살렘을 떠난 지금의 그들은 바벨론 사람들에게 그저 포로와 난민이 불과했다.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땅을 잃어버렸을 때, 그 자녀들은 더욱 고통을 당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부모세대가 기독교의 진리와 믿음의 기초를 잃어버리게 되면, 또 그들이 자녀들에게 그 믿음을 전수시켜주지못했을 때 겪게 될 가장 큰 고통은 후손들이 복음을 들을 기회가 영영 사라져버린다는데 있다. 이같은 고통은 영적 고통을 말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그들의 믿음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듣지 못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보호하심도 동시에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적들이 자신들을 공격했을 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고 자신들의 자녀들은 포로가 되어 수모를 겪게 되었다. 똑같은 이치이다. 만약 부모세대가 그들의 믿음을 지키지 못하면, 자녀들 역시 복음 안에 살 기회를 잃게 된다. 그들은 영영 기독교의 믿음으로부터 분리된채 살아가버릴 수도 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거룩한 성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게 될 것을 약속하셨다.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렘 29:10)”.  마침내 느혜미야를 통해 무너진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게 되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으로 귀환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에 따른 어려움과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느혜미야가 성벽을 재건하려고 할 때, 이를 반대하는 적들은 말로 사람들의 노력을 헛되이 만들어 버리기도 하고, 또 어떻게 해서든 성벽재건을 막기 위해 싸우려고 했다. 유대인들이 이 소식을 들었을 때 그들은 두려워떨었지만 느헤미야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적들로 인해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며 나아가기를 촉구했다.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운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느 4:14)”. 느헤미야가 말하고 있듯이,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뢰를 회복하고 재건하려 할 때에는 분명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반대와 장애물에 부딛치게 된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영적 교훈이 몇가지가 있다.

첫째,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우리의 믿음을 파괴하려고 하는 사단의 세력과 싸워이겨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자녀들과 가족들을 위해서이다. 우리 크리스챤들이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되면, 그 고통은 고스란히 우리 가족과 자녀들, 후손들이 받게 된다.

둘째, 크리스챤들이 우리 원수와 싸울 때 반드시 무기를 들고 싸워야 한다. 칼과 창과 같은 공격형 무기와 방패와 같은 방어형 무기이다. 신약에서 말하길 칼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요, 방패는 곧 우리의 믿음이라고 했다(엡 6:16-17).

우리가 사단의 공격에 대항하여 싸우려 할 때 실제적으로 필요한 공격형 무기는 오직 한 구절의 강력한 말씀일 수 있다. 마치 다윗이 골리앗과 싸워 이길 때, 그의 손에 들고 있던 조약돌 하나로도 충분히 가능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 스스로를 방어하려 할 때에는 하나의 방패로는 충분치 않다. 전후좌우 사방에서 날아오는 적의 불화살을 막하내기에는 한개의 개인 방패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겐 공동체가 필요하다.

마치 로마의 군대가 100명에서 10명의 그룹을 지어 적의 공격을 막아냈을 때와 같은 이치이다. 그들은 항상 함께 모여있었고,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대열을 갖추었다. 우리가 적의 공격에 부딪쳤을 때 단 한사람의, 단 하나의 믿음으로는 충분치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것이고, 교회를 통해 서로를 지키고, 도와주고, 보호해주라고 부르신 것이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서로를 도울 수 있다. 성경은 이것을 거룩한 성도들의 삶이라 부른다. 

느혜미야가 고백했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우실 것이다(느 4:20)”. 그리고 다윗도 동일한 고백을 했다. “여호와께서 구원하실 것이고,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니 그가 원수를 우리 손에 넘기실 것이다(삼상 17:47)”.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우신다”는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여전히 유효하다. 예수님은 우리의 방패이기에 우리를 향한 사단의 공격을 향해 멈추지 않고 싸우실 것이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이시기에 그분을 믿기만 하면 그분 안에서 살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보호하심 아래 거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2021.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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