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독서
표현력과 전달이 약하면 상방의 이해 정도가 급히 낮아진다.
어휘의 조합수 – 발상의 다양함 – 강인한 해결력
어떤 형태로든 공부는 자신의 가능성을 확대하고 살찌우는 일이다. 인생의 보다 깊은 맛과 의미를 가지기 위해, 교양의 폭을 늘림으로써 고도한 삶의 방식을 갖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
생각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생각할 재료가 있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근본적으로 비슷한 구석이 있어 숙달된 사람의 방식이 자신을 더욱 숙련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책은 그저 놓여 있는 상태만으로는 종이 다발에 불과하다.
자신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해주는 사람만 사귀다 보면 자기변혁을 이룰 수 없다.
니힐리즘(Nihilism)=허무주의
@ 진리에 대한 회의: 인간이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가?
@ 도덕적 가치에 대한 의문: 선과 악의 기준이 절대적인가? 아니면 사회가 만들어 냈는가?
@ 삶의 의미에 대한 의문: 인간의 삶에 본래부터 주어진 목적이나 의미가 있는가?
@ 프리드리히 니체가 대표적
자신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면 니힐리즘에 빠지지 않는다
무를 유인 것으로 증명 받고 싶어서 하는 굴절된 행위
자신이 사는 세계에서 널리 통용되는 말을 최대한 깊게 알아야 한다.
상대방이 하는 말의 맥락도, 세부적인 내용도, 어렴풋이 이해할 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사회생활에도 지장을 초래하게 된다.
<성배의 탐색(The Quest for the Holy Grail)>
@ 성배를 찾아 나서는 기사들의 여정
@ 중세 유럽의 기독교 문화와 아서왕 전설이 결합된 문학작품
암유=은유=metaphor
어쩌면 묘한 신앙 같은 믿음은 학교 교육을 통해 배양되었는지도 모른다. 즉 어떤 문제라도 하나의 정답이 있고 해법의 수순이 정해져 있다는 교육이 모든 교과목에 적용되어 왔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정부의 의도대로 충분한 결과를 얻었다고 할 만하지 않을까. 모든 일을 정해진 틀대로 해야 한다고 반복하는 교육은 순종적인 직원과 공무원을 키우는 데 가장 적합한 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경우에 따라 자신이 소비자나 납세자로 불려도 그것을 모욕이라 생각하지 않는 감성을 지니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납세’라는 말을 사용하지 ‘불세’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납: 거두어들인다/ 불: 지불한다
어휘에 의해 사고방식이 확대되면 예전보다 훨씬 많은 가능성을 갖는 것으로 직결된다. 모든 일을 다면적으로 보는 거이 훨씬 쉬워지고, 그로 인해 더욱 다양한 대처 방법과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다. 어휘 양이 많다는 것은 다양한 무기를 손에 쥐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해서 많은 지식을 흡수했다는 증거가 되지 않으며, 책을 계속해서 오독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지성만이 무기다:읽기에서 시작하는 어른들의 공부법>
오늘의 말씀
지혜가 내 얼굴에 광채를 더하기를
전도서 8:1
“누가 지혜자와 같으며 누가 사물의 이치를 아는 자이냐 사람의 지혜는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그의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
Who is like the wise man? Who knows the explanation of things? Wisdom brightens a man’s face and changes its hard appearance.
지금 나의 얼굴에는 광채가 나고 있을까? 가끔 거울 속 내 얼굴이 사납게 변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아주 사소한 일상 속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인 남편에게 나도 모르게 날카롭게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하나님의 지혜를 더욱 깊이 알아 가고 내 삶에 그 지혜가 스며든다면, 나의 얼굴에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은은한 광채가 배어 나오지 않을까? 말씀에 기록된 것처럼, 내 얼굴의 사나운 모습도 부드럽고 온유하게 변화되지 않을까?
하나님의 지혜가 내 마음을 다스리고, 그 지혜가 나의 표정과 말과 행동에까지 드러나기를 소망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먼저 따뜻하고 온유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한다.
아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변화시켜 주실 것을 믿습니다.
나에게도 때가 오겠지
전도서 9:11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
I have seen something else under the sun: The race is not to the swift or the battle to the strong, nor does food come to the wise or wealth to the brilliant or favor to the learned; but time and chance happen to them all.
가끔 나는 남들보다 뒤처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할 때가 있다. 나름대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사역하고 있지만, 아직 눈에 띄게 이루어 놓은 것이 없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은 앞서 나가는 것 같은데, 나는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그런 마음이 살짝 고개를 들던 내게 위로와 힘을 준다. 빠르다고 먼저 도착하는 것도 아니고, 강하다고 반드시 승리하는 것도 아니며, 지혜롭고 똑똑하다고 해서 모든 것을 얻는 것도 아니라는 말씀. 결국 시기와 기회는 모든 사람에게 임한다는 말씀에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된다.
분명 내게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때와 기회가 오겠지.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심어 주신 비전과 꿈도 언젠가는 날개를 활짝 펴고 훨훨 날아오를 날이 오겠지. 그러니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다고 해서 조급해하거나 낙심하지 말자. 오늘도 내게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며, 하나님께서 열어 주실 때를 믿음으로 기다리자.
지난 주일, 문득 찾아왔던 현타는 어쩌면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라는 신호였는지도 모르겠다. 미국에 와서 보낸 지난 8년이 때로는 잃어버린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빚으시고 새로운 길을 준비하고 계셨으리라.
이제는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 시간까지도 새로운 시작의 밑거름으로 삼고 싶다. 다시 힘을 내자!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과 꿈을 붙들고, 새로운 도약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자.
아직 늦지 않았다. 나에게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때가 올 것이다. 그때를 믿음으로 기다리며, 오늘 내게 주어진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가자. 아멘!
그래, 나는 당당한 여자야!
아가서 6:10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여자가 누구인가?”
Who is this that appears like the dawn, fair as the moon, bright as the sun, majestic as the stars in procession?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말씀이 오늘 다시 나를 찾아왔다. 조금은 의기소침해지고 위축되어 있던 내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께서 이 말씀으로 다시 “으랏차차차! 힘을 내!” 하고 격려해 주시는 것 같아 감사하다.
그래, 나는 아침 빛같이 뚜렷하고, 달같이 아름답고, 해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같이 당당한 여자, 황경숙이잖아!
이렇게 말씀을 다시 읽으며 나 자신에게 힘차게 외쳐 본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소중한 사람이며,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비전과 꿈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잠시 마음이 흔들리고 위축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나의 전부는 아니다.
말씀을 붙들고 다시 일어선다. 내 안에 주님께서 주시는 힘이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아침 빛처럼 새롭게, 달빛처럼 아름답게, 햇살처럼 밝게, 그리고 깃발을 높이 든 군대처럼 당당하게!
그래, 다시 힘을 내자! 주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오늘도 당당하게 걸어가자. 내가 품은 비전과 꿈을 향해 담대하게 나아가자.
나는 주님 안에서 다시 일어서는 여자다. 나는 당당한 여자, 황경숙이다! 아멘!
즐겨 순종하는 마음
이사야 1: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If you are willing and obedient, you will eat the best from the land.
‘즐겨’라는 말씀 앞에서 마음이 멈칫했다. 지금 나의 순종은 정말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는 순종일까? 아니면 해야 하니까, 남편과 내가 하지 않으면 할 사람이 없으니까 하는 마음으로, 의무와 책임감에 이끌려 순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말씀을 읽는 순간 마음이 뜨끔했고, 나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내 마음에 늘 품고 있던 말씀이 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고린도후서 9:7)
나는 그동안 ‘즐겨’ 드리고, ‘즐겨’ 행하는 삶을 살아왔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역을 기쁨으로 감당하고, 내게 맡겨진 일을 감사함으로 해 나가는 것이 나의 삶이었다.
그런데 교회를 개척하고,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역을 안정적인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분투하다 보니 어느 순간 그 마음을 놓칠 때가 있었던 것 같다. 해야 할 일은 많고 책임은 무겁다 보니, 처음에 가졌던 기쁨과 감사보다 의무감과 부담감이 앞설 때도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오늘 말씀은 내게 다시 묻는다. ‘너는 지금 즐겨 순종하고 있니?’
주님, 다시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이유로, 책임이 무겁다는 이유로, 순종의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소서. 누군가 해야 하니까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기에 기꺼이 행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교회를 세우는 일도, 사역을 감당하는 일도, 사람들을 섬기는 일도 처음 주님께서 주셨던 기쁨과 감사의 마음으로 감당하고 싶습니다. 결과와 성과에만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주님과 동행하며 순종하는 과정 자체를 기뻐하게 하소서.
다시 말씀으로 내 마음을 정돈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나의 순종이 의무가 아니라 사랑이 되기를, 부담이 아니라 기쁨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 오늘도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겠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