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독서

아래의 글들은 블레즈 파스칼의 <팡세>를 읽으며 발췌한 내용이다.

습관은 본성을 규제한다.

인간은 모든 노력을 경주하여 자신의 결함을 다른 사람들과 자신에게 은폐시키려고 한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결함을 지적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결점을 보는 것도 견딜 수 없다.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그 대상에게는 유익한 일이다. 하지만 진실을 말하는 본인은 다른 사람의 미움을 사게 되므로 불리한 일이다. 군주들과 함께 생활하는 자들은 군주의 유익보다는 자신의 유익을 구한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의 손해를 보면서까지 군주에게 유익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위인들도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간과한다. 그들은 우리 사회와 멀리 떨어져 공중에 매달려서 생활하고 있지 않다. 만약 그들이 우리보다 훌륭하다고 한다면 이는 그들의 머리가 우리보다 높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그들의 발은 우리와 동일한 위치에 있다. 그들 모두는 동일한 수준에 있으며 동일한 땅을 디디고 있다.

  • 알렉산더(Alexander the Great)의 주벽 & 절제

: 알렉산더에게는 클레이토스(Clitus the Black)라는 충성스러운 부하가 있었다. 그는 그라니코스 전토에서 알렉산더의 목숨을 구한 것을로 전해진다. 기원전 328년경, 중앙아시아 원정중 열린 연회에서 장군들의 전공과 알렉산더의 업적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다. 술자리가 길어지면서 분위기가 격해졌고, 클레이토스는 알렉산더가 아버지 필로포스 2세와 부하들의 공로를 무시한다고 비판했다. 알렉산더는 격분했고, 결국 창으로 그를 찔러 죽였다. 술과 분노가 결합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이어진 것이다.

: 알렉산더의 절제- 전쟁에서 사로잡은 여인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음식과 사치에 대해 절제했다.

  • 플루타르코스(Plutarch):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전기 작가

: 역사적 인물들의 생애를 통해 인간의 성격과 도덕적 선택을 탐구했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세계의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오늘의 말씀

아래의 글은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을 기록한 글이다.

다락방에서 들은 그 음성은 참이었다

예레미야 29:10–11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2017년 어느 금요일 저녁, 나는 마가의 다락방 금요집회에 참석했다. 당시 나는 매주 금요일이면 그곳에 가서 부르짖어 기도하곤 했다. 그날 밤,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내게 주시며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게 하셨다.

아버지는 이듬해면 일흔 살이 되실 예정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일흔 살이 되시면 마치 바벨론 포로 생활 70년이 끝나고 해방되는 것처럼, 아버지의 삶에 오랫동안 맺혀 있던 응어리와 영적으로 묶여 있던 무언가로부터 자유로워지실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하나님 앞에 더욱 굳건히 서시고, 더 깊은 신앙을 갖게 되실 것이라는 믿음도 생겼다.

내게 주신 이 말씀으로 인해 가슴이 벅차올랐다. 앞으로 아버지의 삶에 일어날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기도했다.

그런데 며칠 후, 속이 계속 불편해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시던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갔을 때, 청천벽력 같은 의사의 진단을 듣게 되었다. 폐에 물이 찼고, 폐암 4기로 보이니 정밀 검사를 받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끝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셨다고 믿었던 예레미야의 말씀이 내가 기대했던 의미가 아니었음을 깨닫는 순간, 나는 무너져 내렸다. 아버지의 삶에 자유와 회복이 찾아오리라 기대했던 내 마음은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 앞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깨달았다. 하나님의 계획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깊다는 사실을.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아버지가 이 땅에서의 순례자 생활을 마치고, 고되고 힘들었던 삶의 무게를 내려놓은 채 하나님이 계신 천국에서 영원한 평안을 누리게 될 것을 말씀하고 계셨던 것은 아닐까.

이 말씀은 참으로 진실하게 다가온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내가 헤아릴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크다. 아버지에게 허락된 이 땅에서의 제한된 삶이 끝나는 것이 내게는 너무나 큰 슬픔이었지만, 그것이 아버지에게는 재앙이 아니라 천국에서 누릴 영원한 미래와 희망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내가 기대했던 방식과는 달랐지만, 주님은 나의 생각을 넘어 일하고 계셨다. 나는 그 사실을 믿었다.

아버지는 일곱 달이라는 짧고도 긴 투병 생활을 하신 후, 마침내 천국으로 가셨다. 그 시간을 지나며 나는 하나님의 계획을 다 이해할 수는 없어도, 내가 알지 못하는 더 큰 그림 속에서 주님이 일하고 계심을 믿는 법을 배워 갔다.

오늘 이 말씀을 다시 읽으며, 그때의 기억과 함께 내 삶 속에서 일하셨던 하나님의 손길을 되새기게 되어 감사하다.

하지만 감사와 믿음으로 이 시간을 돌아보는 오늘도, 이제는 더 이상 부를 수도, 안을 수도 없는 아버지가 한없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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